이름에 담긴 뜻처럼 산다면
야구연습장의 기계가 고장이 나서 수리공을 불렀다. 부속을 갈아야한다며 명함을 주는데 이름이 Steve Fullylove 이다.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인디언처럼 이름에 고운 뜻을 가지고 있다. ‘날 때부터 용감한 이’ ‘하늘이 기뻐한 자’ 등등 의 뜻이 이름속에 있다나? 미국에 와 귀화할 때 그 이름 뜻대로 성씨를 창립하기도 한단다.
Smith나 Brown 같은 흔한 이름 속에서 Fullylove 라는 예쁜 성씨의 흑인남자를 만나는 것은 신선하다. 이곳 로컬 방송의 여성 앵커는 흑인인데도 Beverly White 이라는 이름을 가져 항상 내가 그 이름 때문에 쿡 하고 웃으면, 옆에 있던 남편에게 핀잔듣는다. 흰 피부를 갈망한 그들 선조의 소망이 담겨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White 씨 집안에 입양된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검은 사람인데 이름이 하얗다는 이유로 웃는 건 실례라는 것이다. 이럴 땐 남편이 내 경망함을 다스려주는 선생이다.
우리아이는 다윗 왕에 대한 성경공부 할 때 태어나서 이름이 David 이 되었다. 물론 한국이름은 항렬에 따라 지었다. 남편과 나는 미국시민권을 가지면서도 이름은 한국이름을 그대로 썼다. 그러니 나의 조앤 이라는 이름은 부르는 이름일 뿐이지 법적인 이름(legal name)은 아닌 것이다. 시인 나태주 선생님께서 내게 愛日이라는 예쁜 애칭도 지어 주셨건만 쓰기가 쑥스럽다.
원래의 이름으로 한국에서 살 때와 미국 와서 조앤으로 살 때가 많이 다르다고 종종 생각한다. 한국에서 살 땐 그래도 남을 의식하고 점잖게 산 데 비해, 미국에 와서 조앤으로 살면서는 아무래도 프리한 사고방식으로 거리낌없는 인물로 살게 되었다. 조신한 것과는 먼 사람이 되어버렸다.
힐러리 로댐 클린턴처럼 자기의 이름을 늦게 까지 고집하는 전문직업 여성도 있으나, 이곳의 한인여성은 대체로 남편 성을 그대로 순종하여 따른다. 요즘의 한국의 진보여성들 가운데는 성씨를 둘 다 쓰는 걸 보았다. 이름에 성이 둘이면 두 몫을 한다는 소리인가?
아무튼 나의 예쁜 이름도 ‘임’가에서 남편 성인 ‘이’가로 바꿔 달면서 흔한 이름이 되었다. 시인인 아버지가 심사숙고하여 만든 내 이름은 수정 晶에 맑을 雅를 쓴다. 맑고 맑다는 뜻을 가진 ‘정아’ 라는 이름은 내가 태어날 당시엔 흔치 않았던 이름이었다. 시인이자 극작가이기도 했던 나의 고모부 이인석씨가 자신의 라디오 드라마의 주인공이름으로 차용해 썼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 후 아버지의 친구였던 김남조 시인이 자신의 딸의 이름을 나와 한자도 꼭 같게 지었다. 오래전 일이다.
칠순 가깝도록 살며 때가 탈대로 탔겠으나, 맑고 맑은 나의 이름처럼 살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글과 내가 같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는 투명한 글을 쓰고 싶다.
누구나의 이름엔 좋은 뜻이 들어있다. 그 뜻대로 살 수만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이정아(본명: 임정아)
경기여중고,이화여자대학교 졸업
1991년 교민백일장 장원
1997년 한국수필 등단
재미수필문학가협회회장, 이사장 역임
피오 피코 코리아타운 도서관 후원 회장 역임.
선집『아버지의 귤나무』외 수필집 다수
조경희 문학상외 다수
한국일보 (미주) 문예공모전 심사위원
한국일보 칼럼 집필(1998년~2012년)
현재 중앙일보 미주판 칼럼(이 아침에)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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