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 2024.10.20 / 조회수: 20 실 문인수 나는 그 동안 답답해서 먼 산을 보았다 어머니는 내 양손에다 실타래의 한 쪽씩을 걸고 그걸 또 당신 쪽으로 마저 다 감았을 때 나는 鳶(연)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 밤 깊어 더 낯선 객지에서 젖는 내 여윈 몸이 보인다 길게 풀리면서 오래 감기는 빗소리 <감상> 실을 감... |
일자: 2024.09.02 / 조회수: 30 늙은 코미디언 문정희 코미디를 보다가 와락 운적이 있다 늙은 코미디언이 맨 땅에 드러누워 풍뎅이처럼 버둥거리는 것을 보고 그만 울음을 터뜨린 어린 날이 있었다 사람들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아이가 코미디를 보고 운다고 그때 나는 세상에 큰 비밀이 있음을 알았다 웃음과 ... |
일자: 2024.07.28 / 조회수: 46 큰 그릇/바다·11 최동룡 (시인, 1951~) 자정(自淨)의 이마를 바윗돌에 간다 흰 피를 다스려 맑아지는 물그릇을 본다 철썩! 따귀를 맞는다 내가 시퍼렇게 정신이 든다 <감상> ‘큰 그릇’이란 ‘큰 사람’의 은유이고 ‘자정(自淨)’은 자신... |
일자: 2024.07.02 / 조회수: 38 뒤처진 새 라이너 쿤체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가로지를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감상> 라이너 쿤체는 1933... |
일자: 2024.05.28 / 조회수: 50 미라보 다리 기욤 아폴리 네르(G. Apollinaire)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 |
일자: 2024.04.12 / 조회수: 470 소 신달자 사나운 소 한 마리 몰고 여기까지 왔다 소몰이 끈이 너덜너덜 닳았다 미쳐 날뛰는 더러운 성질 골짝마다 난장쳤다 손목 휘어지도록 잡아끌고 왔다 뿔이 허공을 치받을 때마다 몸 성한 곳 없다 뼈가 패였다 마음의 뿌리가 잘린 채 다 드러났다 징그럽게 뒤틀리고 꼬였다 ... |
일자: 2024.03.22 / 조회수: 55 소금 달 정현우 잠든 엄마의 입안은 폭설을 삼킨 밤하늘, 사람이 그 작은 단지에 담길 수 있다니 엄마는 길게 한번 울었고,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김치를 꺼내지 못했다. 눈물을 소금으로 만들 수 있다면 가장 슬플 때의 맛을 알 수 있을 텐데 둥둥 뜬 반달 모양의 뭇국만 으깨 먹... |
일자: 2024.02.25 / 조회수: 47 기다리는 이유 이정하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미리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기다린다는 것. 그건 참으로 죽을 맛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해가 지고, 내 삶의 노... |
일자: 2023.12.22 / 조회수: 34 삼월 박서영(1968~2018) 꽃잎들은 긴 바닥과 찰나의 허공이라는 계절을 지나는 중이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왜 그리 짧게 살다 떠나는지. 변하고 돌아서는지. 무덤 속에서 튀어 올라오는 사랑과 입맞춤을 한다. 나는 북쪽에 살아. 피부는 들판의 풀들처럼 자라면서 늙어가고, 가끔... |
일자: 2023.12.10 / 조회수: 26 본보 추천시 컬럼리스트 이해우 씨 두번째 시집‘장미 다방’발간 본보 ‘컬처’문화 섹션의 추천시 컬럼리스트 이해우 시인이 두번째 시집 ‘장미 다방’(도서출판 도훈)을 펴냈다. ‘흑등 고래의 노래’에 이은 이해우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다. 그는 옛 추억속에 잠든 당신의 장미 다방의 커피향, 담배내음에 젖... |
일자: 2023.11.15 / 조회수: 31 추천사 서정주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 |
일자: 2023.10.01 / 조회수: 43 9월 추천 詩 노인들 기형도 감당하기 벅찬 나날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 그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은 봄빛이 닿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목을 분지르며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내 나이와는 거리가 먼 슬픔들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그 슬픔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럽다 그... |
일자: 2023.08.20 / 조회수: 31 이별가 박목월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 |
일자: 2023.07.19 / 조회수: 180 동강에서 울다 문인수 동강은 대뜸 말문을 막는다 어이없다, 참 여러 굽이 말문을 막는다 가슴 한복판을 뻐개며 비스듬히 빠져나가는 저기 내려 꽃피고 싶은 기슭이 너무 많다 몸이 먼 곳 인생이 저렇듯 아름다울 수 있었겠으나 어떤 죄가 모르고 자꾸 버렸으리라 늙은 사내는 엎드... |
일자: 2023.06.16 / 조회수: 77 윤사월(閏四月) 정 순 영 산진달래가 냇가로 내려와 사는 화개골 진목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자목련이 피면 윤사월 우는 뻐꾸기 붉은 노을에 외로운 나그네 <감상> 농자들의 역법인 윤사월은 윤달이 4월에 들은 달을 말한다. 다시 말해 한 달이 더 늘어난 해다. 최근의 윤사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