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500여명 거주
남과 북의 공동체 회복에 혼신
탈북민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90년대 북한의 대규모 아사 사태 이후 생계를 위해 두만강을 넘은 탈북민들이 이제는 한국 사회 곳곳에 포진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뿐 아니다. 이곳 미국에도 중국에서 한국으로 또는 중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와 정착한 탈북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30년 전만해도 북한말을 쓰면 이들에 대한 막연한 이질감에 궁금증이 더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또 고향을 등지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등 말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실향민이다. 6.25 전쟁 때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넘어온, 또 피난민들과 같다.
탈북민 단체인 ‘북향민협회’(회장 전혜정)는 3~4년전 미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대략 500여명으로 파악됐으니 지금은 더 많아 졌을 것이라면서 지난해 LA에 4가정이 들어와 정착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고향 땅을 등지고 미국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가꾸고 있다. 50여년전 한국을 떠나 미국에 둥지를 틀며 온갖 고생과 역경을 헤쳐나갔던 우리의 이민 1세들과 다를 바 없다.
90년대 후반부터 하나둘씩 이곳으로 이주한 탈북민들의 미국 정착기도 벌써 30년을 지나고 있다.
더러는 아메리칸 드림을 달성하며 부를 축적했다. 또 뒤늦게 합류해 허리띠를 졸라매며 새 삶의 터전을 일궈가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 부모세대 실향민들이 느끼는 북한 고향에 대한, 그리고 부모 형제 자매에 대한 그리움을 이들도 그대로 간직하며 먼 미국에서 구술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통일’을 위한 전초대라고 표현한다. 북한과 남한의 문화를 접목하고 생활의 이질감을 좁혀갈 수 있는 유일한 지랫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LA ‘북향민협회’의 ‘아리랑 평화통일예술단’(단장 박진규)는 순수 아마추어 ‘북향민’ 예술단이다. 북한에서 어릴적 익혔던 예술 활동을 떠올리며 밤마다 모여 공연 연습에 매진한다.
탈북민들의 향수를 달래고 한인사회에 북한 문화 소개가 이들의 목적이다. <김정섭 기자> john@usmetronews.com
“민족의 공동체 가꿔 나가는 우리가 ‘통일’”
LA 탈북민들의 모임 ‘북향민협회’
언어 문화 다른 이국 땅서 새삶 꾸리는 탈북민들
미국에만 500여 북한 실향민들의 ‘아메리칸 드림’
허리띠 졸라매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북한 경제 버팀목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우리는 탈북민이라고 부른다. 6.25 전쟁이 끝난 후 북한을 떠난 사람들이다.
기자는 이들에게 탈북민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 그저 ‘실향민’이 좋은 표현인 것 같다.
기자의 부모님은 6.25 피난민이어서 이들 탈북 ‘실향민’이 남들 같지 않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등지고 낯선 환경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지를 잘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북쪽에 살고 있을 부모 형제를 또 부모님을 뼈속같이 그리워하시던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다. 남쪽으로 피난 내려와 맨몸으로 일궈내는 새 삶의 터전이 웬만큼 억척스럽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북한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또 미국으로의 이민오신, ‘고향을 잃은’ 부모님의 인생 대장정을 가슴 저리게 지켜봤다.
여기 또다른 실향민들이 우리 주변에서 열심히 새 삶의 터전을 가꾸고 있다.
굶어 죽지 않으려고 또는 폭압을 피해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또는 몽고를 거쳐 한국으로,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수만리를 걷고 타고 건너온 실향민들,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들이다.
90년대 식량난이 극심해 수백만명이 굶어 죽은 북한을 탈출했던 1차 대규모 탈북 물결 이후 자유를 찾아 두만강을 넘어오는 탈북 인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다수는 한국에서 정착하지만 미국 등 제3국에서 새 삶을 가꾸는 사람들도 많다.
500여 탈북민들 거주
미국에 대략 500명이 넘는 탈북민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탈북민 모임인 ‘북향민협회’( NKRSAUS northkorea refuge support association US) 전혜정 회장은 추산했다.
‘북향민협회’는2019년9월 비영리 단체로 출발해 탈북 실향민들의 권익과 친목 도모를 위해 힘쓰고 있다.
이전에도 탈북 실향민 단체들이 있었다. 지금은 애틀랜타에서 전문식당 ‘평양순대’로 자리잡은 마영애씨와 작고한 김철, 김창호씨 등이 주축이 된 탈북민 단체가 LA 등지에서 숨죽이고 사는 탈북민들의 권익과 정착을 위해 노력해 왔다. 지금은 타주로, 영국으로 흩어져 갔고 엘에이 지역에는 전혜정 회장의 북향민 협회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회장은 “3~4년전만해도 500여명으로 추산됐으니 지금을 더 많아 졌을 것”이라면서 “LA에만도 지난해 4가정 8명이 들어왔다”고 전했다.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그다지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
전회장은 “1년에 한두번 만나는 정도”라면서 “곁에 있다는 사실은 알고 전화 번호 정도 알지만 내왕은 그리 많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탈북민 들의 정착에 발벗고 나서는 한인단체도 있다. 재미탈북자지원회가 그곳.
실향민 부모를 둔 로베르트 홍 변호사가 매년 연말 행사를 주최하며 탈북 실향민들의 애환을 풀어준다. 홍 변호사의 연말 행사에는 많게는 40명 이상의 탈북민들이 모여 서로의 근황을 나누며 필요한 정보와 도움을 받는다고 전 회장은 밝혔다.
“우리가 통일”
많은 사람들이 이제 “통일은 물건너 갔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전혜경씨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서글퍼진다.
그는 “통일은 이미 와 있다”면서 “탈북민들이 남과북 이산 가족과 통일 문제 차원에서 먼저 온 ‘통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70여년간 떨어져 살고 있는 분단 한민족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려 민족의 공통된 정체성을 찾아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또 빈부의 격차가 심해져 남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요즘의 실태를 보면 가난과 폭정에 시달려 눈과 귀가 가려져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과의 공통분모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이질감을 줄이고 또 민족의 근본을 깨우치고 각인시켜주는 역할은 탈북민들이 맡은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고 전회장은 말했다.
북향민협회 전회장은 지난해 발족한 ‘아리랑 평화통일 예술단’(단장 박진규)이 민족의 동질성과 문화 교류의 전초라고 자신했다.
탈북민들의 아마추어 ‘북한 문화 전도사’
아리랑 평화통일 예술단
어릴적 익힌 예술 수업 되살리며 남북 문화 동질성 회복
두고온 고향 그리며 5명이 뭉쳐 만든 에술단
생업 마치고 밤마다 모여 공연 연습으로 구술땀
초창기 한인 이민자들이 걸어온 ‘개척의 길’ 일궈
문화 교류로 동질성 찾기
전회장이 대표를 맡고 있는 이 예술단은 북향민들이 조직한 순수 문화 예술공연팀이다.
발족 1년이 됐지만 아직 단원은 5명뿐.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밤마다 전회장 집에 모여 춤사위를 익히면 구술 땀을 흘린다.
사실 이들은 프로가 아니라 모두 아마추어다.
북한에서는 어릴적부터 한가지씩 예술 재능을 필수로 익혀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은 예술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학교 때부터 충성의 노래, 춤, 기악 등 예술분야의 기본 교육을 반드시 익혀야 한다. 그래야 모범학생이 될 수 있다.
목금, 철금, 기타 손풍금 등등 한가지씩은 해야 한다.
이들 예술단도 모두 왕년(?)에 모범학생이 되기 위해 익혔던 예술적 활동을 기본으로 열심히 배우고 익히며 전문 무용단 못지 않는 멋진 솜씨를 뽐내고 있다.
1년만에 완성한 ‘고향의 봄’ 사계절 의상을 갈아입으며 추는 ‘사계절’ ‘박편로’와 곁들여 추는 ‘부채춤’을 익히며 최근 2개 춤사위를 완성했다고 한다.
전 회장은 “미국에 와 만수대 예술단만 입을 수 있는 고은 의상을 입을 수 있는 호사도 누린다”며 웃었다.
예술단은 LA 무용 관계자들의 지도도 받는다. 또 교회도 출석해 찬양 공연에도 참여한다.
남한의 한국 춤도 배우고 또 북한의 춤도 선보이고. 문화와 춤으로 먼저 통일한다는 각오로 열심을 다한다. 요즘은 예술단을 초청해 공연을 의뢰하는 단체들도 늘고 있다.
북한에서 배웠던 노래와 춤 그리고 기악을 함께 하면서 통일 연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끼’ 넘치는 열정의 ‘북한 문화 전도사’들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이다.
두만강 3번 넘어
평양이 고향인 전회장은 3번이나 두만강을 넘어 북한을 탈출했다.
탈북민들은 1만킬로를 걸어 한국으로 온다고들 한다. 그런데 전회장은 한번도 아니고 3번이나 탈출했으니 3만킬로를 걸어온 것이다.
북한에 아직 친인척이 살고 있어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만 북한에서 남편을 잃었고 현재 장성한 아들이 한국에 살고 있다. 먼저 탈출했다가 아들을 나중에 데려왔다고 한다.
정치범이 아니면 탈출하다 잡혀도 가혹한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은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예전에는 오히려 생계형 탈북은 눈을 감아주며 오히려 묵인할 때도 있었다고 전회장은 말했다.
전회장이 탈북하며 겪은 고초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익히 들어 잘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정상을 벗어난 비정상적인 일들을 겪어야 한다.
한국 국정원에서 같은 진술서를 10번 이상 써야 했다.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였다. 이 과정에서 멘탈 붕괴를 경험하는 탈북민들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정착을 위해 거쳐야 할 하나의 과정일 것이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왔다. 평소 꿈꾸던 ‘천국’을 향해 온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생활이 녹녹하지는 않았다.
‘자격증’이 해답
먹고사는 것은 일은 해결되고 있다. 하지만 고향이 그립고 갈 수도 없다. 북한의 고향에 대한 향수가 간직하는 그들의 삶은 실향민 그 자체의 그리움에 대한 고통이다
한인사회와 대화도 쉽지 않다. 같은 말이라도 이해가 안될 때가 많았다. 누군가가 도와주고 싶다고 해도 거부감과 경계심이 앞선다.
혹시 북한에서 ‘해코지’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또는 나를 이용하려고 하지 않나 등 불신이 앞선다.
어쩌다 고향 사람 말투과 음식으로 이야기하고 나누는 고향의 정겨운 모습도 그리워 진다.
하지만 고마운 사람들도 많다.
탈북민 대부분 교회를 나간다. 이들이 다니는 교회는 동부교회 등 아직은 한정돼 있지만 교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다.
탈북민들의 생활은 ‘억척’ 그 자체다. 그렇다고 새로운 일은 아니다. 우리 실향민 부모세대가 전쟁이후 한국에 정착하며 살았던 것 이상으로 혼신을 다해 살아간다.
이곳 ‘천국’ 미국은 한국보다 더 노력하며 터전을 일궈가며 살아야 한다. 70~80년대 미국으로 이민온 한인들보다도 더 어렵고 힘든 이민 생활을 막 시작하는 것이다.
성공한 탈북자들도 상당히 많다. 이미 미국에 자리를 잡아 어느 남한 이민자들 못지 않게 부를 누리며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자격증’을 가진 탈북민 들이 많다. 북한에서 배운 것이 소용없는 이곳에서는 자격증이 ‘돈줄’이다.
피난민 부모세대가 우리에게 강조했던 것 처럼.
미용사, 정비, 식당, 도우미 등등. 건축 현장에서 막일 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탈북민 대다수는 북한의 친척에게 돈을 보낸다.
우리 한인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번 돈을 한국의 부모 형제에게 보냈던 것과 같다. 해외 특히 미국 이민자들이 보내준 외화가 한국의 부국 성장에 일조한 것 처럼 북한 탈북민들이 보내는 돈이 오늘날의 북한 경제를 지탱해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전회장은 말한다.
미국 오려는 탈북민에 도움 주고파
전 회장은 미국으로 오고 싶어하는 탈북민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늘 고민한다고 한다.
실제 북한을 빠져 나와 한국으로 직행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 이들중 상당수는 미국행을 원한다.
전회장은 난민으로 인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지쳐서 한국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6개월이지만 미국은 1년 또는 2년을 기다려야 한다. 지난 트럼프 행정부 때는 2년내 1명만 난민 인정을 받았다.
망명 신청에도 돈이 든다. 일반 변호사를 고용하면 7~8천달러가 소요되지만 돈을 주지 않고 ‘A 번호’를 받는 방법도 있다고 전회장은 전했다.
전회장은 미국으로 오고 싶어하는 탈북민들에게 이런 정보를 주고 싶다고 말한다.
문의 (213)247-3444. <김정섭 기자> john@usmetronews.com
’재미탈북자지원회‘ 탈북자지원단체LA
“처음에는 홍 변호사가 왜 이러나…싶었어요. 지금은 탈북한 사람들 대부분 미국에서 일자리 잡고 먹고는 살아요. 그런데도 홍 변호사는 매년 사비 털어서 송년회 자리 마련하고 선물이랑 용돈까지 챙겨줘요. 너무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탈북동포 박명남씨 말이다. 박씨는 러시아를 떠돌다 남한을 거쳐 미국으로 왔다. 이민생활도 15년이 넘었다. 이제 나이 60을 바라보고 있다. 박씨 가족에게 로베르토 홍 변호사는 은인 같은 존재라고 한다.
박씨는 “탈북동포 대부분은 로베르토 홍 변호사와 김동진 목사 도움을 받았다. 망명 신청부터 체류신분 유지까지 두 분은 항상 나서줬다”고 전했다.
로베르토 홍 변호사는 직장상해 문제를 주로 다루는 노동법 변호사다. 실향민 출신 부모와 어릴 적 아르헨티나에 이민한 뒤 미국에서 변호사가 됐다. 홍 변호사는 2005년쯤 남가주에 정착하기 시작한 탈북동포 소식을 접했다. 탈북동포의 미국 망명신청이 거부되는 사례가 늘자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그때 같은 자원봉사자였던 김동진 목사를 만났다.
두 사람은 탈북동포 망명신청 서류작업부터 법정 앞 시위까지 주도했다. 그렇게 탈북동포들과 함께 재미탈북자지원회(robertohong18@gmail.com, 310-384-7413)를 결성했다.
이 단체는 탈북동포 망명 및 난민 신청 등 법률지원, 현지정착 생활지원, 영어 및 컴퓨터 교육, 구직활동 지원 등을 하고 있다. 단체 운영비 대부분은 홍 변호사 사비로 충당하고 있다.
홍 변호사는 “지금도 주변에서 ‘탈북동포를 왜 도와주냐, 목적이 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며 “탈북동포가 미국생활을 배우고 살아가는 일이 정말 어렵다. 톨스토이가 ‘남을 위해 사는 게 행복’이라고 말했듯이 인도주의는 우리 삶에 의미를 준다”고 강조했다. <2021년12월28일자 중앙일보 김형재 기자 기사중 일부 발췌>
로베르토 홍 변호사의 ‘재미탈북자지원회’ 주최로 열린 연말 행사에서 참석자 일부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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