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 부모들, 자녀 손주에게‘저축심’키워주기
‘로스 IRA’구좌 개설해 주고 매칭 펀드도
구좌 개설 평균 연령 13.7세, 전년보다 28% 늘어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로 번 돈만 적립 가능
자녀 손주들‘백만장자’만들기 프로젝트‘붐’
“저축은 미덕이다” 한국의 배고프던 시절을 살았다면 익숙한 말이다. 저축 장려 정책. 나라에 돈이 없으므로 국민들이 저축을 하면 이 돈이 국가 건설에 필요한 자금으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흥청망청 버는 대로 써야 국가 경제가 돌아간다는 미국의 경제 이론과는 상반된다. 하지만 요즘 미국이 달라지고 있다.
요즘 미국인들은 어린 손주나 자녀들에게 현금으로 ‘세뱃돈’을 주지 않는다. 현금을 줘봐야 써버리면 그만이다.
혹자는 쓰라고 주는 돈인데 한꺼번에 써버린다고 해도 탓할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옳은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절약과 저축의 미덕도 익혀야 한다.
장수 시대를 맞아 요즘 청소년들은 쉽게 백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기나긴 ‘백수’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 것인가. 재정이 부족하면 백수의 길은 ‘고난의 행군’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미국인들은 일찍부터 손주나 자녀들에게 미래를 위한 저축의 길을 가르친다.
월스트릿 저널은 20세 이전부터 개인 은퇴 연금을 시작하는 청소년들이 크게 늘었다고 보도했다.
아르바이트 돈 모으기
노스캐롤라이나 샬롯의 집 뒷마당에서 엄마와 함께 꿀벌 4통을 관리하는 공인 꿀벌사 첼시 셰이버는 올해 14살이다. 벌통에서 꿀을 따 유리 단지에 담은 다음 자전거로 동네 배달을 다닌다.
거의 5,000달러를 모은 첼시는 수입을 ‘로스 IRA’에 적립했다.
‘로스 IRA’는 개인이 개설할 수 있는 은퇴 저축 플랜으로 세금을 낸 수입으로 적립하기 때문에 평생 세금을 내지 않고 돈을 불려 나갈 수 있다. 또 자녀들에게도 세금 없이 물려줄 수 있다.
요즘 은퇴 자금을 한 푼도 모으지 못한 미국인들이 많아 문제가 되고 있지만 현명한 조부모, 부모들의 도움으로 어릴 적부터 미래를 위해 저축을 시작하는 어린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첼시의 엄마 조 셰이버는 재정 플래너 리아 메이브리의 조언으로 딸 첼시의 ‘로스 IRA’를 개설했다.
첼시의 오빠도 ‘로스 IRA’를 가지고 있다. 방학이나 방과 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꼬박 적립하고 있다.
메이브리 재정 플래너는 “영원히 세금 없이 불어난다. 구좌를 여는데 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아주 쉬운 결정이다”고 밝혔다.
근로 수입만 적립 가능
나이 어린 가입자에게는 ‘로스 IRA’가 주는 세제 혜택이 더 매력적이다.
세금을 낸 순수입이므로 찾을 때 세금을 내지 않는다. 특히 구좌에서 불어나는 이자 수익 역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면세된다. 따라서 장기간 세금 없이 계속 불어나며 평생 찾지 않고 자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
세금을 내지 않는 돈으로 적립하는 전통 IRA(traditional IRA)는 나중에 찾을 때 세금을 내야 하므로 청소년들에게는 이득이 반감된다. 따라서 로스 IRA가 어린 자녀들에게는 매우 이상적인 은퇴 저축 구좌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다만 조부모나 부모들이 용돈으로 주는 돈으로는 구좌 개설이 불가능하다. 적립금은 반드시 일을 해서 번 돈이 있어야 한다. 일을 해서 부모로부터 받은 용돈이 있다면 구좌를 개설할 수 있다.
어린이 스스로 구좌를 개설할 수는 없다. 부모나 보호자가 동행해야 한다. 이를 ‘커스토디얼 로스 IRA’ (custodial Roth IRA)라고 부른다. 자녀들이 베니피셔리가 되는 것이다. 구좌의 평균 나이는 13.7세다. 지난 6월 기준으로 가입자가 전년 대비 28% 늘었다.
로스 IRA 개설하기
18세 미만이면 부모 등 성인이 보호자 자격으로 구좌를 관리한다. 자녀가 18세 또는 21세(주에 따라 다름)가 되면 간단한 서류 작업으로 구좌 소유주를 바꾸면 된다.
미네소타 세인트 제임스의 존 벡커는 뱅가드에 딸 엘리의 ‘로스 IRA’ 구좌를 개설했다. 엘리가 여름 방학동안 동네 부두에서 배 접안 일을 도와주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다.
적립금은 장기간 지수 펀드에 투자했다.
지금 엘리는 대학생이다. 여름방학에 공사 관리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을 계속 로스 구좌에 적립하고 있다. 아버지 존 베커는 “번 돈으로 새 차를 사거나 휴가비를 위해 모아두는 돈이 아니다. 미래를 대비한 돈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과 후 파트타임, 여름방학 아르바이트, 유급 인턴십, 자영업, 또는 부모의 비즈니스를 도우면서 받은 수입으로 적립할 수 있다. 용돈이나 생일 선물로 받은 돈은 적립할 수 없다.
2023년 적립 가능한 최대 금액은 6,500달러다. 이 금액까지 벌어서 받은 돈을 적립할 수 있다.
18세가 됐다면 로스 IRA를 스스로 개설할 수 있다.
저스틴 퍼브스는 18세에 군에 입대했다. 군 복무 4년 동안 정부 매칭펀드를 받으면서 연방 은퇴 저축플랜에 돈을 적립했다. 또 직접 E트레이드의 로스 IRA를 개설해 적립하고 있다. 정부 플랜보다 더 많은 투자 옵션이 제공된다.
26세로 결혼해 자녀를 두었고 현재 3년 차 법대생인 그의 로스 IRA 구좌에는 3만 5,000달러가 적립돼 있다.
자녀에게 급여 주기
플로리다 클리어워터에 사는 재정 플래너 션 칼드웰은 자녀 4명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모두 로스 IRA 구좌를 오픈해 줬다. 자녀들은 칼드웰을 도와주고 급여를 받았다. 사무실 잔일과 서류 분쇄, 홍보 전단지 우송 등의 일을 했다. 부모 비즈니스에 고용돼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 것이다.
자녀들이 더 커져 다른 파트타임 일을 하면서 로스 IRA 적립하면 적립금과 동일 한 금액을 매칭해 구좌에 추가로 돈을 넣어줬다.
17세 아들 제이콥은 동네 슈퍼마켓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어 2023년 최대 금액을 적립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들어 있는 돈은 수십 년 후에 찾을 것이다. 세금 내기 전 수입으로 적립하는 IRA와 달리 언제라도 돈을 벌금 없이 찾을 수 있다.
또 첫 주택 구입비용으로 사용하면 투자 수익의 1만 달러까지 벌금이나 세금 없이 쓸 수 있다.
재정 전문가 마크 캔트포위츠는 학생들이 소유한 로스 IRA는 돈을 꺼내지 않는 한 대학 학자금 보조금 자격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매칭 펀드 해주기
로스 IRA는 자녀과 손주들에게 ‘저축의 미학’을 깨우쳐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앞선 칼드웰 처럼 자녀들이 벌어서 적립하는 돈 만큼 부모가 적립해 주면 자녀들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은 돈을 적립하려 할 것이다.
좋은 사례가 있다.
펠실베니아 엘리자베스타운에 사는 폴과 캐런 월제머스 부부는 장손자 앤드류 글래스가 16세에 처음 파네라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하자 로스 IRA에 매칭을 해주기 시작했다.
손자 앤드류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서 버는 수입의 85%만큼 로스 IRA 에 적립해 준다. 하지만 조건을 달았다.
손자가 버는 돈의 15%를 로스에 적립하고 10%는 자선 단체에 기부하며 또 재정 관련 서적인 빌 벤스타인의 책 “If You Can: How Millennials Can Get Rich Slowly”를 읽는 것이다. 이 책은 수입의 15%를 저축해 30~40년 동안 인텍스 펀드에 투자하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어떤 가족은 100% 매칭해 주기도 한다. 또 어떤 가정은 반반씩 매칭해 준다.
글래스는 코넬 대학 4년 차로 법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3년은 더 조부모가 매칭으로 로스 IRA에 적립해 줄 것이다.
할아버지 폴 월제머스는 “평생 저축 습관을 들여주는 방법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정섭 기자 john@usmetr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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