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친구를 만났을 때다. 아이 친구 엄마와 같이 앉아 있는데 딸국질을 하는게 보였다. 혼잣말처럼 “뭐 맛있는 걸 혼자 먹었나, 딸국질을 하네”라고 하는 찰나 아이의 친구 엄마는 웃으며 영어로 “딸국질을 하는 걸 보니 키가 크려나 보다”고 했다. 같은 상황, 두 엄마가 다른 반응을 보인 것이 신기했다.
아이 친구 엄마는 미국에서 자란 한인 2세인데 나이가 같아 친구가 됐다. 서로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아서 만날 때마다 대화가 참 즐겁다. 이날도 그랬다. 같은 상황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보면서 서로가 알고 있는 것들을 맞춰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한국에서 자란 나는 어릴 때 할머니로부터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친구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신 본인은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 눈에 눈곱이 있으면 “밤사이 샌드맨(Sandman)이 다녀갔다”고 말해준단다. 잠과 관련된 미신인데 잠의 요정인 샌드맨은 아이가 자고 있을 때 아이 방에 찾아온다. 아이가 밤새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도록 마법의 모래를 살살 뿌려주고 간다. 아침에 생긴 눈곱은 샌드맨이 뿌린 모래의 흔적이라고 한다. 전통적으로는 커다란 모래 자루를 짊어지고 있는 할아버지나 마법사 이미지인데, 최근 영화나 그림책에서 나오는 샌드맨은 좀 더 젊고 귀여운 느낌으로 그려진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아이와 관련된 미신이라 하면 한국에서는 삼신 할머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삼신 할머니는 아기를 점지하고 출생에 관여하는 여신이다. 어린 시절 우리 할머니는 어린 나에게 아기들 엉덩이에 있는 파란 몽고반점은 삼신 할미가 엄마 뱃속에서 얼른 나가라며 엉덩이를 찰싹 때린 자국이라고 했다. 물론 진짜로 믿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릴 땐 꽤나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자란 친구는 “황새가 아기를 보자기에 싸서 데려다 준다”고 믿는다고 했다. 미국판 삼신 할머니는 바로 황새인 셈이다. 딸 아이가 어릴 때 이 내용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본 기억이 났다. ‘아기배달부 스토크(Storks)’라는 영화였는데, 아기를 배달하는 황새 ‘주니어’와 미처 배달되지 못하고 황새들과 살고 있는 여자 주인공 ‘튤립’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영화에서는 아이들이 황새 나라로 편지를 보내면, 그 편지를 받은 황새들이 발신지로 아기를 배달해준다. 친구는 어렸을 때 황새가 아기를 데리고 온다고 하기에, 그렇다고 하면 과연 문 앞에 와서 초인종을 누르는지, 혹은 산타 할아버지처럼 굴뚝을 타고 벽난로로 들어 오는지 궁금해서 엄마한테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가끔 길을 가다보면 집 마당에 황새 장식을 해놓은 집을 봤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제서야 이해가 됐다.
아주 옛날에 한국에서는 아들이 태어나면 새끼를 꼬아 고추를, 딸은 숯을 걸어놓는 전통이 있었다고 친구에게 말해줬다. 친구도 어렴풋 기억을 해냈다. 집안에 태어난 아기를 집밖 악한 걸로부터 보호한다는 주술적 의미가 컸다는 관련 내용은 우리가 함께 더 많은 내용을 찾아보면서 알았다.
그런데 이날 친구와 했던 여러가지 미신과 전통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선풍기’ 이야기였다. 친구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믿는 잘못된 상식 중 하나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질식사 한다”는 것이라고 했고, 나는 “그게 사실이 아니냐?”며 깜짝 놀라 되물었다.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려면 창문이나 방문을 조금 열어놓으라는 말, 정말 많이 들었던 말 아니던가. 당장 인터넷 기사 검색을 시작했다. 여름철 선풍기에 관한 뉴스가 있었다. 그러나 ‘선풍기 괴담’이라는 제목 아래 우리가 흔히 들었던 ‘선풍기 질식사’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심지어 인공지능 AI가 이 기사를 썼다는 설명까지 덧붙여져 있었다. 시대가 이렇게 변했구나, 싶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앞으로 우리는 서로를 더욱 이해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을테다. 아이들이 저만치에서 뛰어오는데 친구가 아이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금 밟지마, 엄마 등이 부러질거야.” 영어로 많이 쓰는 속담(Step on a crack, break the momma’s back)인데 보도블럭이나 길에 있는 틈을 밟으면 엄마 등이 부러진다는 미신이라고 했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많은 것들을 배운 날이었다.
김동희
전 미주 한국일보, 뉴욕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했다. 공중보건학(MPH)을 전공하고 현재 미국병원 암센터에서 암 예방교육과 아시안 커뮤니티 건강 관련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dhkiml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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