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손님
남들은 한국을 탈출하여 휴가를 떠나는데, 나는 한증막을 찾아온 셈이 되었다. 인천공항에 당도해 밖으로 나서는데 안경에 부옇게 김이 서린다. 마치 찜질방에 들어서듯이.
사상 최고로 더운 여름이라며 연일 기록행진을 하는 한국의 여름이다. 전력난으로 블랙아웃이 될 거라며 비상이 걸리고 더위를 피해서 가던 은행도 쇼핑 센터도 시원하지 않다. 올해 역대 초유의 더위라니 지구온난화로 더위는 해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나보다. 이런 여름철엔 남의 집에 방문하는 것도 실례가 된다. 손님이 오면 집주인도 옷을 갖춰 입어야 하고 손을 대접하려면 더운 부엌을 서성거려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옛말에 ‘여름 손님은 3일이면 냄새난다.’ 하고 ‘여름에 오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속담도 생겼지 싶다. 이런 환영받지 못할 여름손님 노릇을 몇 년째 하고 있다. 난들 날씨 좋은 캘리포니아를 떠나 습한 더위 속으로 오고 싶었겠는가? 수술을 한국에서 하였기에, 그 후의 경과를 살펴야 하기에 한 여름을 무릅쓰고 다시 나오게 된 것이다.
가장 만만한 곳이 친정집이었다. 한국에 오래 머물려면, 엄마가 계신 친정집에 머무는 것이 당연하다 싶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엄마와 그동안 밀린 이야기도 많이 나누리라 생각했다. 엄마도 같은 마음으로 나를 반길 줄 알았다. 엄마와의 밀월은 며칠 가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알던 예전의 엄마가 아니었다. 팥쥐 엄마가 콩쥐 대하듯 해서 내 엄마가 생모가 맞나? 잠시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동생들이 아픈 누이를 보러 방문을 하면, “얘 나도 암 환자다.”하며 자신도 보호받아야 하는 환자라는 사실을 수시로 확인시키곤 했다. 자식들의 관심이 멀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누가누가 더 아픈가를 나와 경쟁하듯 증명하려 해서 여간 민망한게 아니었다. 노인 되면 아이 된다더니 순수한 아이가 아니라 자기만 아는 못된 아이로 퇴행된 듯 보였다. 동생들 말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많이 변했다고 한다. 홀로 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를 철통같이 하는 것일까?
한국을 떠나 40년 가까이 미국에 나와 살면서 그동안의 가족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갑자기 변한 게 아니라 시나브로 변했을 터인데 그 과정을 건너뛰었기에 낯설어 보인다. 무척 늙어버린 엄마도 어른들이 다된 조카들도 중년의 동생들도 세월의 간극을 넘어서진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
엄마 때문에 낙담한 내게, 여고 동창들은 저마다 자신의 부모가 변한 에피소드를 쏟아낸다. 정말 기상천외한 사례가 많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특별하지 않은 노인들의 모습이라니 우리도 머잖아 겪는다는 예고이기도 해서 씁쓸하다. 늙음이 단순한 낡음이 아니길 바래본다. 늘어가는 나이테만큼 원숙하다는 말을 듣고픈 마음은 나만의 마음이 아닐 것이다.
나였더라도 귀찮은 여름손님을 반기지 못했을 것이다. 아픈 엄마에겐 더 부담스러웠을 병든 자식의 여름손님 노릇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늙고 병든 몸으로 속 시원히 자식 수발을 못해주는 엄마의 답답한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다. 역지사지를 일깨워준 이 여름의 고국방문. 이젠 ‘곱게 늙기’가 당면한 숙제임을 알려주었다.
불볕 같은 폭염도 속히 지나갈 것이다. 우리의 젊음처럼.
이정아(본명: 임정아)
경기여중고,이화여자대학교 졸업
1991년 교민백일장 장원
1997년 한국수필 등단
재미수필문학가협회회장, 이사장 역임
피오 피코 코리아타운 도서관 후원 회장 역임.
선집『아버지의 귤나무』외 수필집 다수
조경희 문학상외 다수
한국일보 (미주) 문예공모전 심사위원
한국일보 칼럼 집필(1998년~2012년)
현재 중앙일보 미주판 칼럼(이 아침에)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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