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어느새 5년이다. 5년 전인 2018년, 현재 일하고 있는 미국병원 암센터에 새로운 연구소가 생기면서 코디네이터 중 한 명으로 팀에 합류했다. 새로운 연구소는 ‘건강 형평성(Health Equity)’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헬스 에퀴티’라는 영어 단어를 그때 처음 들었다. 이를 번역한 ‘건강 형평성’이란 한국어 마저도 낯선 채로 첫 출근을 했던 기억이 있다.
건강 형평성이란 세계보건기구의 정의에 따르면 개인이나 인구집단 간에 불공평한, 또한 피하거나 고칠 수 있는 건강 격차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흑인의 평균 수명이 백인보다 짧다거나, 가난한 지역의 주민들은 부유한 지역 주민들보다 특정 질병의 유병률이 더 높다는 등이 건강 불평등의 대표적인 예다.
매우 부끄럽지만, 이런 예시들을 처음 들었을 때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가난하고, 못 배우고, 아무거나 먹고, 아무렇게나 살면 더 많이 아프고,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생각했었다. 5년 전의 ‘김 코디’는 건강불평등, 건강 격차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이 문제를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연구소 박사님들이 지도 한 장을 보여주셨다.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빨갛게 표시된 지도였다. 유방암을 너무 늦게 발견해서 사망한 사람들의 주소지를 작은 점으로 찍었는데, 한인타운을 포함한 인근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붉게 나타났다. 물론 한인타운이 다른 지역보다 인구 밀도가 높고, 노인 인구 비율도 높고, 한인타운에 한인들만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숫자는 말하고 있었다. 일찍 발견했더라면 치료받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던 사람들, 막을 수 있었는데 우리가 막지 못한 죽음들이 LA 한인타운에 유난히 더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2019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LA 한인타운을 비롯한 인근 지역 한인 여성들의 유방암 검사율은 48%인 것으로 나타났다. LA 카운티 여성의 유방암 검사율은 평균 79.8%, 백인은 79.4%, 아시안은 69.9%다. 미국 의료제도가 한국보다 복잡하다고 해도, 건강보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도, 아무리 그렇다해도 평균 검사율 격차는 너무 컸다. 유방암은 정기검진으로 조기에 발견, 치료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질병이다. 조기 발견할 경우 5년 평균 생존율은 90% 이상이다. LA 한인들의 유방암 검사율은 왜 낮을까, 왜 일찍 발견할 수 있는 질병을 늦게 발견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더 아프고 빨리 죽을까.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같은 조사에서 암 검사를 받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아프지 않아서’인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가 그 뒤를 이었다. 정기검진, 특히 암 검사의 경우 증상이 없을 때 정기검진을 통해서 조기 발견할 수 있다는 교육이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이후 한인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나 성당 등의 종교기관과 협력하여 암 예방 교육과 인식개선 교육을 실시했고, 건강보험이 없는 저소득층 한인들을 위해 무료 검사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4년여가 지났다. 전화번호가 공개되어 있다 보니 종종 예전 무료 행사 관련 자료를 보고 전화가 걸려 오기도 한다. 알고 있는 정보로 안내를 해주다 보면 “이렇게 좋은 정보가 있는지 몰랐어요”라고 하신다. ‘김 코디’, 더 열심히 일해야겠구나, 싶다.
최근 마이클 마멋 박사의 ‘건강 격차’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다. 영국의 공중보건학자인 마멋 박사는 건강 불평등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다. 책에 소제목으로 쓰여진 “평등한 사회에서는 가난해도 병들지 않는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와 한참을 쳐다봤다. 그런 한인사회 만드는 데 힘을 보태달라는 격려로 들려서 든든했다.
적어도 2023년에는 정보가 부족해서, 저소득층이라서, 정기검진이 가능한 암 검사(유방암, 자궁암, 대장암)를 받지 못하는 한인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한인 사회, 우리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기 위해 ‘김 코디’는 올해도 열심히 달려야겠다.
김동희
현재 미국병원 암센터 커뮤니티 아웃리치팀 수석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 전 미주 한국일보, 뉴욕 중앙일보 기자. '미국 엄마의 힘' 저자.
연락처: (213)54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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