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 뱅크(SVB)와 시그니처 뱅크의 전격적 폐쇄에 이어 중소 은행들의 도미노 붕괴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면서 은행권에 암울한 먹구름이 감돌고 있다. 급기야는 미국 11개 대형은행이 예금 인출사태로 위기에 올려 있는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에 300억달러를 예치하면서 은행 구하기에 나섰다.
은행 폐쇄 사태는 대공항 이후 15년만에 터진 초대형 금융 스캔들이다.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 부동산 시장 붕괴로 시작됐지만 지금은 연방정부의 급속한 이자율 인상이 금융권에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면서 촉발됐다.
이번 사태는 멀리 바다건너 유럽에까지 번지고 있다.
하지만 은행권의 먹구름은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고 수개월에 걸쳐 조용히 몰려온 것이다. 은행의 기본적 운영상의 문제가 누적된 결과라고 보면 된다.
은행은 고객들의 예금을 주택이나 회사를 설립하려는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이익을 챙기는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그런데 요즘 은행의 기본 기능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 중소 은행들의 최근 위기 사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짚었다.
SVB 사태의 원인은 채권(본드) 가격하락
SVB는 채권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이자율이 낮을 때 구입한 것이다. 지난해 연방 준비제도는 고 물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8번이나 이자율을 올렸다. 이자율이 올라가면서 투자자들은 SVB가 가지고 있는 것 보다 더 가치가 높은 새 채권에 눈을 돌렸다.
첨단 산업이 냉각 조짐을 보이면서 일부 SVB 고객들은 예금했던 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예금 인출금을 충당하기 위해 SVB는 210억달러 상당의 채권을 팔았지만 이로인한 은행 투자 손실은 거의 20억달러에 달했다.
이 투자 손실은 투자들과 일부 은행 고객들에게 경고 등이 됐다. SVB 고객들은 은행 보유 금액이 “내 예금을 감당할 수 있을 까”, 은행 잔고가 이와 유사한 재산손실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등등. 불안해진 고개들이 은행으로 몰려 순식간에 수백억 달러를 인출하기 시작했다.
전형적 뱅크런 진행중
연방정부가 지난 40여년동안 공격적인 규제성 금융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은행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SVB 폐쇄 이전에도 투자자들은 눈에 불을 켜며 어떤 은행이 부실 자산을 가지고 있는지를 주의롭게 살펴왔다. 그중 가장 경계하는 부분이 은행의 채권 보유 손실이다. 채권을 팔지 않은 상태에서 가상의 손실에 주목한다. 만약 은행이 이들 채권 자산을 팔아야 할 상황이 온다면 이 가상의 손실이 실제 손실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연방정부가 이자율을 올리면서 은행들은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판매 평가 손실에 민감해진다. 이자율이 올라가고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 이 평가 손실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평가 손실은 특히 은행 예금액의 비율에 영향을 미친다. 다시말해 손실이 커진다는 은행이 고객들의 몰려 인출을 하려 할 때 이들의 인출을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된다.
지난해 말 미국 은행들은 이자율 상승으로 비판매 평가 손실이 6,00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완충 자본 크게 줄어들어 인출금 감당 어려워
이 금액은 은행 완충 자본의 1/3 이상에 해당한다. 완충 자본이란 손실로부터 예치금을 보호할 수 있는 보유 자본을 말한다.
은행이 보유한 완충 자본이 줄어들수록 고객들은 예금을 잃을 수 있는 위험에 더 높을 것이며 이로 인해 예금주와 투자자들은 해당 은행에서 돈을 찾거나 투자금을 회수해 스스로 보호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수일이내 발표된 평가 평가서에 따르면 은행들의 잠정 손실 금액은 6,000억달러보다 두배가 많은 1조7,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보장되지 않는 예금, 현금 보유고 낮아
은행에 예금된 돈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의해 25만달러까지 보장을 받는다. 만일의 경우 FDIC가 25만달러까지는 보증을 해 준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SVB 예금의 90%는 25만달러 이상으로 FDIC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다.
많은 은행들의 현금 보유고가 크지 않은 것도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신용평가사 피치에 따르면 자산 500억~2,500억달러 규모의 많은 은행들은 현금 자산이 4% 미만이라는 것이다.
현금화 자산이 부족하다는 말은 인출 사태가 속출하면 방어할 수 있는 여력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연방 정부는 현금화 자산 보유액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지만 SVB 와 같은 중형 은행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뱅크런에 자신 있는 은행 없어
S&P 글로벌 마켓 정보 분석각 나산 스토벌은 SVB케이스에서 “하루에 예금고의 25%가 빠져나갈 때 견딜 수 있는 은행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방 준비제도와 기타 은행 감독기관들은 이 같은 자금 부족 현상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연방정부는 은행이 보유하는 정부 채권과 기타 자산을 담보로 은행에 최대 1년간 현금을 대출해주는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연방정부는 특히 은행들이 보유 채권을 급하게 처분하다고 해도 낮은 금액이 아니라 원래 구입 가격의 채권 가치를 인정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해도 잠정 손실을 보지 않게 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명이다.
현재까지 이들 프로그램은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은 3월중순까지 고작 120억달러 정도만 대출을 신청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연방정부로부터 전통적인 은행 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1,530억달러를 빌렸다. 이는 2008년 재정 위기 이후 1주일새 대출받은 금액으로는 가장 많은 금액이다. 3월초 은행들의 연방정부 대출 금은 1주에 50억달러에 그쳤다.
확산 방지 안간힘
3월 중순 스위스 당국은 안전성에 위문이 증폭되는 거대 은행 ‘크레딧 스위스’ 보호를 천명했고 다음날 미국 정부는 대형 은행들을 설득해 위기에 몰린 ‘퍼스트 리퍼블릭’에 거금을 수혈했다.
미국의 중소 은행들은 미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기지 대출에서부터 비즈니스 대출까지 대형 은행들의 사각지대로 밀린 소시민들의 대출 시장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골드만 삭스 분석가들은 연방정부가 0.5% 올리면 작은 은행들에 미치는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경제학자들은 이자율 인상을 놓고 찬반 양론의 격론을 벌이고 있다. 많은 투자자들은 연내에 연방정부가 다시 이자율을 내릴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투자자들은 지역 은행 주식을 처분하고 있다. 퍼스트리퍼블릭 주식은 1년전과 비교해 80% 이상 하락했기 ‘퍼시픽 웨스턴’, ‘웨스턴 얼라이언스’ 등 지역은행도 절반으로 가치가 떨어졌다.
중요한 것은 투자자들이 이번 위기가 조만간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정섭 기자> john@usmetr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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