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enu

구독신청: 323-620-6717

이달의 수필

wellbeing 2024.09.22 08:58 Views : 15

이정아 수필.jpg

 

말의 총량, 입의 십계명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 했지만 나는 시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육사 출신의 군인 시아버지는 늘 내게 작전 지시하듯 주의 사항을 전달하시곤 했다. 시아버지는 시정명령을 적어서 품에 간직하고 있다가 나를 만나면 그걸 꺼내어 읽으셨다. “제1은, 제2는, 제3은…”하고 읽으시는데 보통 7번까지 있었다. 그 내용은 “부드럽지 않다, 금방 ‘예’하지 않는다, 여성스럽지 않다” 등등이었는데 한마디로 하자면 ‘순종적이지 않다’로 요약할 수 있다.

 

종종 예상 밖의 엉뚱한 질문을 하셔서 나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하셨다. 남편이 해외 근무 나가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위도가 몇이고 경도가 몇이냐 물으시면, 무척 더운 사막으로 낙타가 있다는 상식만 가진 나는 난감했다. 남편이 체류할 곳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며 못마땅해하셨다. 속으로 “내가 그곳에 폭탄을 투척할 일도 없건만 지형지물을 왜 알아야 하며 위도와 경도가 무슨 소용인가?” 하고 화가 났었다.

배우기보다는 남을 가르치려 드는 선생 출신의 며느리와 상명하복을 원칙으로 삼는 군인의 기싸움이 아니었을까.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요즈음 곰곰 돌아보니 요령부득의 미운 며느리였을 것이다. 그냥 립서비스라도 사근사근했더라면 시아버지와의 갈등 같은 건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친정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정아버지는 늘 내게 어려운 분이었지, 애교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친정엄마와도 최대의 밀월 기간은 2주일 정도이고 그걸 넘기면 늘 다투고 만다. 아파서 한국에 오랜 기간 있을 때에도 즐거운 동거는 잠시뿐 오피스텔로 나와서 딴살림을 차리니 훨씬 숨쉬기가 수월했다.

 

혈육과의 동거가 어려운 것은 서로의 기대치가 높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늘 잘되라고 조언을 한다는 것이 잔소리처럼 들리고, 자식은 아직도 나를 못 미더워하는 부모인가 싶어 반발하다 보니 상충하는 것이다. 이럴 때 혈연이 아닌 사위나 며느리가 완충의 부드러운 역을 감당해야 집안이 화목하게 돌아갈 것인데, 지혜 있는 이가 그 역할을 잘할 수 있다. 나는 유연하지 못해 그 역을 잘 소화해 내지 못했다.

‘정직’을 모토로 거짓말은 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살았다. 그러나 살다 보니 내가 하지 않은 말도 날개를 달고 다니며 사람 사이에 골을 만들기도 한다. 한때는 비밀을 공유하던 사이가 원수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걸 보면서, 입을 조화롭게 사용하는 기술이 필요함을 느낀다. 나의 언어는 치장이 없는 대신 부드럽다거나 상냥하진 않다. 전화도 ‘용건만 간단히’여서 상대방이 늘 묻는다. “바쁘세요?” 이메일도 무척 사무적이다. 오죽하면 오랜 친분의 나태주 시인이 기념문집을 내시는 데, 내 편지글을 책에 실으려니 너무 딱딱하다며 친절한 글 한 편을 다시 써 보내라고 하셨을까.

 

입술 근육을 좀 풀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날이 있다. 남들이 재미있다 하니 의무감에 실없는 말을 남발한 날. 마음 한구석 교만으로 날 선 혀를 감추지 못한 날. 내가 내뱉은 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허풍을 보탠 날. 남의 말꼬리를 잡고 다언증이 도지는 날. 그런 날은 다언이 실언이 되고 만다. 집에 돌아오면 다 쏟아부음에 마음이 허전하고 공기 속의 날아다니는 실수에 후회막급하다.

 

말의 총량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말을 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워야 한다. 말무덤에 묻거나 가슴에도 묻어야 할 말들이 있다.

인터넷에서 ‘입의 십계명’이라는 글을 만났다. 1. 희망을 주는 말 2. 용기를 주는 말 3. 사랑의 말 4. 칭찬의 말 5. 좋은 말 6. 진실된 말 7. 꿈을 심는 말 8. 부드러운 말 9. 화해의 말 10. 향기로운 말을 하라. 시아버지가 속주머니에서 꺼내어 나를 향해 읽으시던 것과 비슷해서 놀라웠다. 청맹과니를 사람을 만들고 싶어 하신 시아버지의 뜻은 물거품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긍정의 언어로 토닥토닥 격려하고 쓰담쓰담 위로하며 나머지 생을 살아간다면 시아버님께 속죄가 될 것인가? 그러게 깨달음은 늘 뒤늦게 온다.

 


 

이정아(본명: 임정아)

경기여중고,이화여자대학교 졸업

1991년 교민백일장 장원

1997년 한국수필 등단

재미수필문학가협회회장, 이사장 역임

피오 피코 코리아타운 도서관 후원 회장 역임.

선집『아버지의 귤나무』외 수필집 다수

조경희 문학상외 다수

한국일보 (미주) 문예공모전 심사위원

한국일보 칼럼 집필(1998년~2012년)

현재 중앙일보 미주판 칼럼(이 아침에) 집필

일자: 2024.10.03 / 조회수: 3

비영리‘이웃케어클리닉’소아과 개설 진료 확대

비영리 단체 이웃케어가 운영하는‘이웃케어 클리닉’에서 새로 개설된 소아과를 맡게 된 강영태 소아과 전문의. 강영태, 멘지바 로페스 소아과 전문의 상주 “메디칼 등 다양한 보험 환자 환영” 비영리 단체인 커뮤니티 ‘건강 지킴이’ 이웃케어...

일자: 2024.10.03 / 조회수: 2

문화원, 샌디에이고서 추석 홍보 성황

LA한국문화원(원장 정상원)은 9월 15일 샌디에이고 발보아 파크에서‘House of Korea’(관장 황정주)와 공동으로‘한국 문화의 날’행사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 날 행사는 한국 명절인 추석을 미 현지인들에게 알리고, 한국관 홍보를 위해 개최됐다. 한국음...

일자: 2024.10.03 / 조회수: 2

무궁화 여성 합창단의 멋진 화음 돋보였다

무공화 합창단 정기 공연 및 창단 31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곱게 차려입은 단원들이 멋진 화음으로 노래를 선사하고 있다. 창단 31주년 기념 및 23회 정기 연주회 성황 세리토스 지역을 중심으로 93년 발족된 한인 여성들의 ‘무궁화 합창단’(단장 강성희)이 창립 31주...

일자: 2024.09.22 / 조회수: 15

이달의 수필

말의 총량, 입의 십계명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 했지만 나는 시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육사 출신의 군인 시아버지는 늘 내게 작전 지시하듯 주의 사항을 전달하시곤 했다. 시아버지는 시정명령을 적어서 품에 간직하고 있다가 나를 만나면 그걸 꺼내어 읽으...

일자: 2024.09.22 / 조회수: 14

9월 추천 詩

고향의 강 정순영 짙푸른 지리산 정기 어린 섬진강은 유유히 흐르네 하동 송림 하얀 모래밭을 휘감아 해 저물면 학 두루미 날개짓에 금빛 은빛 윤슬로 번뜩이는 유년의 꿈 언제나 고향집 고샅길을 밝히는 맑게 씻은 달 섬진강물 위에 세월은 돛을 달고 바람 따라 흐르네 아 아 그...

일자: 2024.09.22 / 조회수: 17

Q&A로 알아보는 미국에서 병원가기

Q: “대변으로 대장암 검사를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한인타운에 살고 있는 62세의 남성입니다. 친구들을 만나면 건강 관리나 정기검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건강보험이 없다보니 모든 비용이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우리 나이쯤 되면 대장내시...

일자: 2024.09.21 / 조회수: 13

새의 비상(Flight of the bird)

새 학기가 시작되었어요. 올해 선택 과목으로 요리나 목공예 프로그램에 배정되기를 바랬어고 아트는 저의 마지막 선택이었어요. 그래서 아트 클래스에 배정되었을 때 조금은 실망스러웠어요. 하지만 교실에 들어섰을 때, 다른 학생들이 만든 작품으로 교실이 가득 차 있는 걸 보...

일자: 2024.09.21 / 조회수: 13

전기차 안심하고 타도 될까?

얼마 전 한국을 잠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때마침 한국에서는 전기차 화재가 잇달아 발생했는데, 그 중 인천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둔 벤츠 전기차에서 불이 나 같은 주차장에 있던 수십 대의 차가 불에 탔다는 뉴스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특히 처음 불이 시작하...

일자: 2024.09.08 / 조회수: 21

‘이글 러너스 마라톤 클립’발족 4주년 맞아

주 4회 30여 회원들 세리토스, 풀러튼서 연습 ‘이글 러너스 마라톤 클럽’(Eagle Runners Marathon Club, 이글 러너스)이 지난달 발족 4주년을 맞았다. 이글 러너스는 2020년 8월 15일 출범했다. 이강용 회장은 그동안 회원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오늘의 팀을 이루었다...

일자: 2024.09.08 / 조회수: 25

2024년 미주 한국어 시 낭송 대회

LA 한국문화원은 ‘2024 미주 한국어 시 낭송 대회’를 개최한다. 대상은 18세 이상으로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미국 내 한국어 학습자다. 참가 방법은 문화원이 선정한 시 20편 중에서 한국어 학습 수준에 맞는 한국 시를 선택해 30초 이내로 한국어 자기소개서 함께 ...

일자: 2024.09.08 / 조회수: 26

소외계층 건강 지킴이 이웃케어클리닉에 전미암협회 공로상

지난달 7일 이웃케어클리닉 애린 박 소장(가운데)이 전미암협회 일다 제페다 커뮤니티 파트너십 부국장(오른쪽에서 두번째)으로부터 공로상을 받고 있다. <이웃케어 제공> 암 검사 중요성 홍보 및 검사 독려 헌신 공로 인정 한인사회 소외계층 건강 지킴이 이웃케어클리닉(Kheir C...

일자: 2024.09.02 / 조회수: 25

8월 추천 詩

늙은 코미디언 문정희 코미디를 보다가 와락 운적이 있다 늙은 코미디언이 맨 땅에 드러누워 풍뎅이처럼 버둥거리는 것을 보고 그만 울음을 터뜨린 어린 날이 있었다 사람들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아이가 코미디를 보고 운다고 그때 나는 세상에 큰 비밀이 있음을 알았다 웃음과 ...

일자: 2024.09.02 / 조회수: 31

재산세보다 비싼 자동차 보험료 아끼려면?

요즘 사람들 만나서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자동차 보험료 얘기다. 보험료가 너무 올랐는데, 낮추는 방법이 없냐는 것이다. 교통사고 변호사로서 기회 있을 때마다 자동차 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보험료 낮추는 방법을 소개했더니, 보험 전문가로 생각하고 그렇게 물어보는 것...

일자: 2024.08.19 / 조회수: 27

혼돈 속의 아름다움 (Beauty in Chaos)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무한한 가능성과 깊은 신비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입니다. 선명한 질감과 선, 푸르른 색상과 소용돌이로 가득한 그림을 상상해보면 때론 아름답기 보다는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흐의 ‘별이 빛나는 ...

일자: 2024.08.12 / 조회수: 47

유나이티드 헬스케어‘건강 및 웰빙 체험 행사’개최

8월 28일(수) 은혜한인교회 29일(목) ANC 인싱크대학 ‘활력 넘치는 인생’ 건강도 챙기고 메디케어 궁금증도 풀고 유나이티드 헬스케어는 건강 & 웰빙 체험 행사에 캘리포니아 엘에이 카운티와 오렌지 카운티의 한인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한인 메디케어 수혜자들...

일자: 2024.07.28 / 조회수: 40

이달의 수필

여름손님 남들은 한국을 탈출하여 휴가를 떠나는데, 나는 한증막을 찾아온 셈이 되었다. 인천공항에 당도해 밖으로 나서는데 안경에 부옇게 김이 서린다. 마치 찜질방에 들어서듯이. 사상 최고로 더운 여름이라며 연일 기록행진을 하는 한국의 여름이다. 전력난으로 블랙아웃이 될...

일자: 2024.07.28 / 조회수: 40

7월 추천 詩

큰 그릇/바다·11 최동룡 (시인, 1951~) 자정(自淨)의 이마를 바윗돌에 간다 흰 피를 다스려 맑아지는 물그릇을 본다 철썩! 따귀를 맞는다 내가 시퍼렇게 정신이 든다 <감상> ‘큰 그릇’이란 ‘큰 사람’의 은유이고 ‘자정(自淨)’은 자신...

일자: 2024.07.27 / 조회수: 42

Q&A로 알아보는 미국에서 병원가기

Q: “자외선 노출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여름이 되면서 야외 활동 시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외선에 노출되면 피부에 해로울 수 있고 피부암의 원인이 자외선 노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특별히 어린이들은 더 주의를 해...

일자: 2024.07.21 / 조회수: 39

레몬법, 환불 결정 뒤 반납까지 걸리는 시간은?

레몬법 클레임을 통해 차량 반납 및 환불이 결정되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아무래도 새로 나오는 차들에 첨단 기능이 많이 적용되면서 고장 사례도 같이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 사무실에서도 벤츠나 현대/제네시스의 경우, 한 달에만 3-4대 이상의 차들이 환불 결정을 받...

일자: 2024.07.21 / 조회수: 55

비빔밥의 마술 (The Magic of Bibimbap)

12살 다솔이의 그림 일기 비빔밥은 한국의 고유한 음식이고, 또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양념된 고기, 다양한 색깔의 야채, 그리고 계란 부침은 한입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입 안에서 작은 맛의 폭발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이 많은, 그리고 각기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