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네수엘라 3-2로 미국 꺾고 사상 첫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우승.
미국 8회 말 2점 동점 홈런으로 따라갔지만 경기 흐름 못바꿔.
"볼넷이 경기 망친다" 속담이 현실화.
베네수엘라가 미국을 3-2로 꺾고 사상 처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우승을 거뒀다. 대회 MVP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내야수 마이켈 가르시아에게 돌아갔다.
WBC 사상 처음 결승전에 진출한 베네수엘라는 17일 플로리다 론 디포 파크에서 9회 유헤니오 수아레스(신시내티 레즈)의 좌중간 2루타로 승리를 장식했다. 2017년 이후 9년 만에 우승을 노렸던 미국은 8회 말 그동안 부진했던 브라이스 하퍼(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동점 투런 홈런으로 2-2 동점을 만들며 경기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그러나 9회 초 등판한 불펜의 게럿 휘트락(보스턴 레드삭스)이 선두 타자 루이스 아라에즈(SF 자이언츠)를 볼넷으로 출루시키면서 화를 자초했다. “볼넷이 경기를 망친다(Base on Balls kills the Game.)”는 야구 속담이 현실화됐다. 베네수엘라 오마르 로페스 감독은 곧바로 대주자로 승부수를 던졌다. 23살의 발 빠른 하비에르 사노하(마이애미 말린스)는 대주자답게 2루 도루에 성공했다. 간발의 차로 세이프되자 미국은 챌린지를 사용했으나 심판의 원심이 확정됐다. 무사 2루서 오프시즌 시애틀에서 신시내티로 이적한 수아레스는 좌중간을 빠지는 적시타로 결승점을 뽑았다.
미국은 9회 말 마지막 공격에서 카일 슈와버(필라델피아 필리스)-거나 핸더슨(볼티모어 오리올스)-로만 앤서니(이상 좌타우투, 보스턴 레드삭스) 등이 삼진-플라이-삼진으로 물러나 경기를 뒤집는데 실패했다. 1점 차에서 베네수엘라의 마무리로 등판한 대니엘 팔렌시아(시카고 컵스)는 위력적인 볼로 뒷문을 지키며 우승을 매조지했다. 승리 후 감격에 겨운 팔렌시아는 마운드에 무릎을 꿇고 그라운드로 몰린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작전으로 체포되는 국가적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WBC 대회에서는 보란듯이 미국을 제치고 사상 첫 우승에 성공했다. 베네수엘라는 2009년 준결승 진출 이후 17년 만에 4강에 이어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당시 한국 대표팀에 졌다.
베네수엘라 전력은 우승과 멀었다
이번 대회 베네수엘라의 전력은 우승 후보까지는 아니었다. 우승 후보는 개최국 미국과 디펜딩 챔프 일본, 메이저리그 올스타로 구성된 도미니카 공화국 등이었다. 조별(D조) 경기에서도 베네수엘라는 도미니카 공화국에 6-8로 졌다. 두 팀은 나란히 3승1패로 8강 토너먼트 티킷을 확보했다. 조 1위는 도미니카 공화국.
8강에서 우승 후보 일본을 만난 8-5로 역전승하며 4강 무대로 올라섰다. MVP 출신 로널드 아큐나 주니어(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의 솔로 홈런으로 초반 스타트로 경기를 풀어간 양 팀은 결국 파워에서 승부갈렸다. 일본은 3회 말 모리시타 쇼타의 3점 홈런으로 스코어를 5-2로 벌려 챔피언다운 저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5회 마이켈 가르시아가 2점포로 추격의 불씨를 살렸다. 가르시아는 8강과 준결승 고비마다 적시타로 MVP에 선정됐다. 6회에는 윌러 어브레이유(보스턴 레드삭스)가 전세를 뒤집는 3점포로 일본을 눌렀다. 양팀은 홈런 5개를 주고 받았다.
일본은 역대 대회에서 4강에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결국 우승팀 베네수엘라 길목을 건너지 못하고 챔피언 수성은커녕 4강마저 놓쳤다. 슈퍼스타 오타니는 베네수엘라전 패배에 “분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준결승 이탈리아전도 역전승
준결승 이탈리아전도 역전승으로 일궈냈다. 이번 대회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는 2회 말 밀어내기 볼넷과 땅볼로 선취 2점을 득점했다. 이탈리아의 신데렐라 스토리의 완결판이 작성되는 듯했다. 베네수엘라는 4회 초 결승전 결승타를 때린 수아레스가 홈런으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러키 세븐 7회 로널드 아큐나 주니어가 깊숙한 유격수쪽 내야안타로 2-2 동점을 만들었고, 가르시사아 역전타, 루이스 아라에즈가 중전 적시타로 추가점을 보태 4-2, 역전승으로 대망의 결승전에 진출했다. 상승세를 타면서 미국마저 꺾고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우승팀 베네수엘라에게는 상금 250만 달러가 주어졌다. 결승전에서 동점 홈런을 때린 브라이스 하퍼는 베네수엘라 선수들과 일일이 포옴을 하며 우승을 축하하는 스포트맨십을 보여줘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미국은 우승 놓쳤지만 흥행엔 성공
2026년 WBC 대회는 비록 미국이 우승을 놓쳤지만 흥행에는 성공했다. 특히 부계와 모계의 핏줄로 대표팀에 선발될 수 있도록 폭을 넓혀 유럽의 야구 불모지 국가에도 ‘베이스볼’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번 대회에서 캐나다도 처음 8강에 진출하는 경사를 맛봤다.
특히 축구의 나라 이탈리아는 WBC 준결승 진출 경기가 전국 중계가 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탈리아는 FIFA 월드컵 본선에 18차례 출전했고 4차례 우승을 거둔 축구의 나라다. 감독 프란시스코 서벨리, 캡틴 비니 패스퀴안티노(캔자스시티 로열스) 등 코칭스태프 및 주축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출신이다. 이들이 사상 첫 4강 쾌거를 이룬 원동력이다. 전 뉴욕 양키스 레전드 포수 호르헤 포사다, 노히트노런을 작성했던 SF 자이언츠 레전드 코치 데이브 리케티 등도 이탈리아 코치로 포함됐다.
미국 야구에서 이탈리아계는 매우 유명하다. 물론 뉴욕에는 영화 대부에서 잘 보여줬듯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대거 거주한다. 뉴욕 양키스 전설 조 디마지오, LA 다저스 모티 라소다 감독, 뉴욕 메츠 보비 발렌타인 등이 이탈리아계 이민자 후손들이다.
WBC 국제화 차원서 핏줄 닿으면 대표 자격 부여
MLB의 WBC 국제화 노력은 핏줄이 닿으면 국가 대표 자격을 주는 방법을 택했다. 한국 대표팀에도 코리안-아메리칸 자격으로 3명이 선발됐다. 이번 대회에 푸에르토리코 대표로 출전한 3루수 놀란 아레나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지난 2023년 대회 때는 미국 대표팀이었다.
한국 대표팀은 2009년 이후 17년 만에 8강에 진출했다. 8강에 진출한 팀 가운데 가장 저조한 2승2패 성적으로 티킷을 부여 잡았다. 8강에서 메이저리그 올스타 멤버들인 도미니카 공화국에 7회 10-0 머시 룰로 패하는 참극을 빚었다. 호주를 7-2, 5점 차로 누르고 도쿄 돔의 기적을 일으켰으나 8강에서는 기량 차이를 고스란히 드러내 앞으로 큰 과제를 남겼다. 빠른 볼을 갖고 있어도 도망가는 피칭의 투수들, 타율 기록을 중시하는 컨택트 히팅의 한계 등.
녹다운 토너먼트에서의 야구는 메이저리그 패넡과 같았다. 투수는 삼진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고, 타자는 홈런으로 승부를 내야 했다. 한국 야구는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앞으로 WBC 대회에서 설령 조별 토너먼트를 통과하더라도 이번과 비슷한 결과를 벗어나지 못한다.
미국의 WBC 야구도 이번에도 다시한번 한계를 드러냈다. 잉글랜드 축구와 너무 흡사하다. WBC는 스프링캠프 시기의 대회다. 마크 데로사 감독은 준우승 후 “선수들이 정규시즌과 같은 폼이 아니었다”고 했다. 베네수엘라와의 결승전에서 단 3안타레 그쳤다. 심판의 애매한 스트라이크 콜로 2-1 승리를 거둔 도미니카 공화국전에서도 7안타였고 솔로 홈런 2개였다. 투수들이 좋은 8강전부터 두자릿수 안타는 없었다. 거액의 연봉을 받는 슈퍼스타들도 3월 경기에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WBC 다음 대회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3년 후가 될지, 4년 후가 될지 아직은 미정이다.
문상열 스포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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