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튼이 내려간 뒤에도…
예전에는 June Gloom이라 부르던 흐린 날씨가, 요즘은 벌써 May Gloom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예년 5월의 해맑던 기억 때문인지, 흐린 날씨 속에서도 살살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은 자꾸 밖으로 흔들린다. 해서 문득 어디론가를 향해 낯선 풍경이나 오래된 예술 작품 앞에 서서 마음을 정화하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오랜만에 Getty Center 로 향했다.
그날 게티 뮤지엄 개관 초기부터 오랜 세월 도슨트로 활동해 오신 지인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던 중 한 그림 앞에서 발걸음이 멈추었다.
“연주가 끝난 뒤, 출연료 문제로 거리의 악사들끼리 다투는 장면을 그린 작품입니다.”

조금 전까지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던 악사들의 손들이 이제는 서로를 밀치며 위협하고 있었고 그들의 얼굴에는 분노와 욕망이 먼저 드러나 있었다. 17세기 프랑스 화가 Georges de La Tour의 “The Musicians’ Brawl (음악가들의 다툼)”은 어쩌면 이런 인간의 본성을 이미 오래전에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순간 나에게 묘한 충격이 밀려왔다. 바로크 시대에도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몇 해 전 읽었던 한 기사가 떠올랐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공연 뒤편 이야기를 다룬 짧은 기사였다. 무대 위에서는 열정을 다해 천상의 소리를 만들어내던 사람들이, 커튼 뒤에서는 계약과 보상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긴장 속에 놓여 있다는 내용이었다.
수많은 청중의 환호 속에서 연주를 마치면 연주자들이 서로 웃으며 악수를 하지만, 어떤 이들은 “누가 더 많이 받았는가”라는 불만으로 차가운 침묵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연주자의 개런티라는 것은 음식점 메뉴판 처럼 가격이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주최측이나 연주자들 서로 서로가 늘 애매한 입장에 있다.
도대체 기준이 뭘까?
실력인가, 명성인가, 경력인가, 인맥인가, 아니면 결국 주최측의 형편인가?
같은 무대에 서더라도, 개런티에 있어서는 평균은 있을지언정 결코 평등하지는 않은 세계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스펙을 부풀려 제출한다는 이야기도 듣고, 또 출연료가 먼저 입금되어야만 연주 참석 여부를 알려준다는, 지나친 우월감에 사로잡힌 연주자들의 씁쓸한 뒷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특히 여러 동료들과 함께 서는 무대에서는, 자신이 쌓아온 실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감추어져 있던 자만스러운 모습을 경험한 관계자들이 다시는 함께하고 싶지 않은 음악가라며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경우도 보게 된다. 관객의 호응이 남들보다 좋다고 해서 무대 위에서 스스로를 과시하듯 행동하던 연주자들의 커리어가 끝나던 모습 또한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왜냐하면 어느 악기를 막론하고 소리를 통해 영감을 나누는 연주는 연주자의 심성도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음악 속에서 실력만이 아니라 결국 연주자의 인성과 태도까지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요즘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가들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 역시 그러한 진정성 가득한 인격적인 진면목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술은 인간을 더 고귀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 안에 숨어 있는 욕망마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일까.
사람은 결국 각자의 욕망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 같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더 가지고 싶은 마음,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 그래서 자주 올라오는 뉴스 속에서 가족과 동료를 배신하고, 자신의 공동체까지 희생시키며 본인 만의 생존과 욕심부터 먼저 챙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우리는 씁쓸함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이런 각박한 현실의 한 가운데서도 음악과 미술 등의 예술은 마음을 정화한다고 여겨지기에 사람들이 예술의 가치를 높게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음악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내면서도, 무대 뒤에서는 각자의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이런 현실은, ‘프로’ 무대예술가들의 씁쓸한 일면이다.
그런 의미에서 La Tour의 그림은 단순히 “음악가들의 싸움”이 아니라. 어쩌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초상화인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s longa, vita brevis)”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위대하게 느껴지는 예술도 결국 불완전한 인간의 손을 통해 탄생한다. 그래서 음악가들은 부족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갈등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다시 악기를 들고, 노래하며 무대에 다시 선다. 연주자는 연습 속에서 자신의 한계와 마주하고, 웃고 울기를 반복하면서도 결국 음악 안에서 다시 자신을 붙들게 되는 것 같다. 아마도 인간의 탐욕과 상처까지도 품어 안은 채, 순간적으로 나마 우리를 조금 더 높은 세계로 이끌어 가는 음악의 치유적인 승화력 때문일 것이라 느껴진다.
어쩌면 위대한 예술이란 처음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완벽한 작품이 아니라, 연약한 사람들의 욕망과 상처 속에서 더 높고 나은 곳을 바라는 몸부림 속에서 이루어지는 극복과 함께 오는 기적적인의 선물 같다.
그래서 커튼이 내려간 뒤에도 사람들은 다시 그 음악을 찾고, 오래된 그림 앞에 다시 멈춰 서게 되는가 보다…!
김 양희 음악박사
Comment 0
|
일자: 2026.05.15 / 조회수: 39 커튼이 내려간 뒤에도… 예전에는 June Gloom이라 부르던 흐린 날씨가, 요즘은 벌써 May Gloom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예년 5월의 해맑던 기억 때문인지, 흐린 날씨 속에서도 살살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은 자꾸 밖으로 흔들린다. 해서 문득 어디론가를 향해 낯선 풍경이나 오... |
|
일자: 2026.04.14 / 조회수: 215 <김양희의 예술과 함께하는 삶> 내게 남아있는 오렌지 향기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여러 해 전, 이맘때쯤 해질녘이었다. 북가주에 있는 대학원 입시생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언젠가부터 차 안으로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한 향이 유난하게 강하게 느껴진 순간, 그 향기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차... |
|
일자: 2025.12.13 / 조회수: 269 남가주 한인 미술가 협회 신입회원전 ‘Ten Voices’ 10명의 작가가 바라본 시각 언어로 풀어낸 다양성 주목 리앤리 갤러리서 6일부터 13일까지… 6일 리셉션 남가주 한인 미술가 협회(회장 전윤선) 신입회원전의 Ten Voices<열개의 이야기>가 12월 6일부터 13일 ... |
|
일자: 2025.11.16 / 조회수: 259 고은혜 개인전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시니어에 용기를” 리앤리 갤러리서 15일부터 22일까지 80세에 맞이하는 첫 개인 작품전시회인 ‘고은혜 개인전’이 11월 15일부터 22일까지 리앤리갤러리(이 아그네스)에서 열린다.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 |
|
일자: 2025.10.04 / 조회수: 350 “이경수, 경계를 허무는 ‘색’ 으로 새로운 예술의 장을 열다” 이경수 개인전 2025 “기법이나 재현을 넘어 ‘본질 그 자체’ 표현에 더 집중” 10월 4일부터 25일까지 리앤리 갤러리서 최근 신작 발표 화가 이경수의 개인전 <Unholding Colors>이 리앤리갤러리(이 아그네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10월 4일부터 25일까... |
|
일자: 2025.09.07 / 조회수: 401 제4회 시니어 미술 공모전 심사평 배우자, 자녀 그리고 손주들에 대한 사랑대세 수상작 포함 참가 작품 전시회 9일~13일 리앤리 갤러리 리앤리갤러리(이 아그네스)가 주관한 제4회 시니어 미술공모전이 8월 24일 조현숙, 김성일, 이경수 작가의 공정한 심사를 거쳐 최종 입상자가 ... |
|
일자: 2025.08.27 / 조회수: 386 <이경수 문화 칼럼> 회화의 혁신 팝아트의 거장 Roy Lichtenstein 만화그림을 예술작품의 소재로 하여 성공을 이룬 예술가를 묻는다면 단연코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떠오른다. 만화일까? 예술일까? 초기에는 작품이 지나치게 상업적이거나 파생적이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작가는 만화(comic book)를 통해 회화의 혁신적인 개혁을 완성한다. 1... |
|
일자: 2025.08.27 / 조회수: 379 Jeffrey Gibson: “the space in which to place me” 전시회리뷰 5월 10일부터 9월 28일까지 브로드미술관 (the Broad 221 S. Grand Ave Los Angeles, CA 90012) 지난 5월부터 남가주의 브로드미술관이 야심차게 준비한 전시회는 화려한 예술품의 전시회를 넘어 음악과... |
|
일자: 2025.07.13 / 조회수: 503 그림 에세이 “본질의 호기심, 미적 가치 답을 찾기 위한 작업은 계속” 우연한 선과 면과 형상들이 선물처럼 내 앞에 보여진다 알록달록 꽃세상을 이루었던 봄의 향기가 지나가니 초록빛의 싱그러운 이파리들이 녹음의 대지를 장식한다. 한해의 반년이 훌쩍 지나가는 ... |
|
일자: 2025.06.22 / 조회수: 490 <인상과 표현> 어반 스케쳐스 그룹 전시회 리앤리 갤러리에 펼쳐지는‘어반 스케쳐스’대규모 그룹전 6월 7~28일 55명 작가들의 가볍고 자유로운 스케치 감상기회 본격적인 야외활동이 전개되는 6월. 리앤리 갤러리(이 아그네스)는 ‘인상과 표현(Impressions &... |
|
일자: 2025.05.23 / 조회수: 526 Willem De Kooning Willem De Kooning 2차 대선 이후 두드러진 미술 사조 추상표현주의 대표자 스타일적 선택과 자유로운 붓놀림, 풍부한 색감과 표현 추상표현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가장 두드러진 미술사조 이며, 미국화단에서 그 선두에 선 화가를 꼽으라면 빌럼 드 쿠... |
|
일자: 2025.05.10 / 조회수: 474 The Contemplative Relation 전시회 데이빗 장, 벤 박 리앤리갤러리서 5월 10~31일 2인전 비슷한 주제의 맥락서 본질의 답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 예술가들은 자신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창작활동을 통하여 끊임없이 갈구하며 그 답을 찾게 된다. 살아있는 ‘나&rs... |
|
일자: 2025.04.17 / 조회수: 421 Naive & Primitive, Post Impressionist Henri Rousseau 당대는 조롱거리로 여겼지만 독학 천재로 인정 가공되지 않은 순수의 아름다움이 스며든 느낌 자연을 소재로 자연과 그 자연의 이미지에서 받은 영감으로 작품을 하는 예술가들은 많다. 그 느낌은 작가의 심성과 맞물려... |
|
일자: 2025.03.11 / 조회수: 516 미국 전후 아방가르드의 핵심멤버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예술과 삶의 틈새에서 작업하고 싶다” 표현주의에 도전하며 개념 지향적인 작품 제작 필자가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전시회를 본 것은 여러해 전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의 특별전시회 였... |
|
일자: 2025.02.16 / 조회수: 406 액자(Frame) 이야기 작품과 한 몸으로 보이고 자연스레 어울리는 조화 중요 몸에 맞는 옷 선택해 조화로운 패션의 완성 이치 액자(Frame)란 그림이나 사진을 끼우는 틀을 의미한다. 액자는 그림의 경계를 이루는 용기로 사진, 캔버스 회화, 도면 및 인쇄물 포스터, 거울등과 같은 ... |
|
일자: 2025.01.27 / 조회수: 529 william Turner portrait 빛의 화가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 단풍이 물들었던 만추의 풍경 어울렸던 장관으로 기억 예술을 사랑하는 영국의 가장 대표적이고 자랑스러운 작가 오래전 영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그렇듯이 영국의 곳곳에는 많은 문화유... |
|
일자: 2025.01.18 / 조회수: 383 미술관 공동창업자 엘리와 에디스 브로드 The Broad 라크마, 게티에 이어 LA의 중요한 문화 산실로 급부상 부의 축적을 사회에 환원한 엘리와 에디스 브로드 부부 미서부 지역의 대표적인 미술관은 라크마(LACMA)와 게티미술관(The Getty)을 꼽을 수 있지만 브로드미술관(The Broa... |
|
일자: 2025.01.06 / 조회수: 424 william Turner portrait 빛의 화가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 단풍이 물들었던 만추의 풍경 어울렸던 장관으로 기억 예술을 사랑하는 영국의 가장 대표적이고 자랑스러운 작가 오래전 영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그렇듯이 영국의 곳곳에는 많은 문화유... |
|
일자: 2024.12.21 / 조회수: 377 인테리어 디자인에 어울리는 미술품을 선택하는 방법 자신이 마음에 드는 작가의 작품을 선택해야 후회 없어 각자의 취향과 기호도 따라 차이 있지만 기본 원칙 이해 미술인구가 점차 늘어나면서 미술 애호가들은 미술품의 소장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1가... |
|
일자: 2024.12.06 / 조회수: 451 George Braque George Braque 정적인 사물을 위주로 한 정물화에 집중 사물을 기하학적 형태의 변형, 다각적 관점 음악계에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있다면 미술계에는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있다. 그들은 동시대에 같은 분야에서 라이벌 관계를 이루며 일을 했던 천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