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앞두고 검붉은 포도들이 슬슬 마켓 과일 판매대를 장식하고 있다. 포도를 사다가 집에서 와인이나 담가 먹어 볼까. 와인값도 비싼데…
그런데 마켓에서 파는 포도로도 와인을 만들 수 있을까.
카버넷 쇼비뇽, 멀로, 피노누아… 잘 알려진 와인용 포도는 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없다. 그러면 알 굵은 거봉 포도, 영동 포도 등 늘 즐겨 먹는 포도로도 와인이 가능할까.
와인을 만들려면 포도에 당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야 한다. 당이 효모를 만나 분해되면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알코올(에틸)이 나온다. 효모가 당을 먹고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우리를 발효라고 한다.
와인용 포도 품종은 50가지가 넘는다. 이들 포도는 작고 과육이 적은 대신 껍질이 두텁다. 일반 포도보다 당도는 상당히 높다. 과일이 당도를 높이려면 우선 비가 많지 않아야 되고 비가 와도 물이 쑥쑥 잘 빠지는 토양이어야 한다. 또 낮에는 뜨겁고 해가 잘 들고 밤에는 기온이 낮은 해안성 기후 지형이 최적이다.
와인은 프랑스의 대명사처럼 불리지만 옛날 말이다.
요즘은 캘리포니아 와인이 프랑스를 능가한다. 캘리포니아에서 자라는 포도 내에 당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당이 많으면 효모들이 더 즐겨 먹는다(분해).
캘리포니아의 건조한 날씨와 강력한 태양이 포도의 껍질을 단련 시켜 충분한 당을 확보 할 수 있게 만든다.
하루 종일 강력한 캘리포니아 햇빛을 받는 포도송이들이 밤이면 해변에서 올라오는 안개로 열기를 식히고 또 다음날 햇빛 목욕을 반복하는 ‘연단’의 시기를 거치면 튼튼하고 당도 높은 질 좋은 포도로 거듭난다.
포도주 만들기
예전 한국에서 포도주를 담글 때면 포도에 설탕을 넣고 소주를 조금 넣어 보관한다. 설탕을 넣는 이유는 당도가 낮아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다. 포도주가 달달하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는 설탕이 가미됐기 때문이다. 충분히 발효된 포도주는 단맞이 거의 나지 않는다. 당이 거의 다 발효됐기 때문이다. 물론 알코올 도수는 그만큼 더 세지게 마련이다.
우선 포도를 딴다. 와이너리에서는 가지도 함께 넣지만 집에서는 포도만으로 충분하다. 포도를 손으로 으깬다. 너무 으깨면 과육이 뭉그러지므로 살살 다룬다. 포도의 껍질에는 당을 알코올로 분해하는데 필요한 효모가 잔뜩 묻어 있다. 이 효모가 즉시 당을 먹으며 발효를 시작한다.
서서히 알코올 도수는 높아 질 것이고 도수가 높아진 알코올은 자신을 탄생시켜주는 효모를 모조리 죽여 버린다. 보통 알코올 농도 14%면 효모가 소멸돼 더 이상 분해 과정이 진행되지 않는다. 요즘은 도수를 높이기 위해 개발된 ‘수퍼’효모로 도수를 18%도 이상까지 끌어 올려준다. 이렇게 만들어진 혼탁한 알코올 액체를 잘 걸러 껍질과 찌꺼기를 다음 병이나 통에 보관해 숙성 과정을 거치면 근사한 와인이 탄생한다. 우리가 먹는 일반 포도로 담근다면 아마도 설탕을 조금 넣어야 할 것이다.
괴테는 하루 2리터의 와인을 마셨다고 한다. 그래도 82세까지 살았다는데 지금의 와인 도수는 아닐 것이다. 얼마전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일 소량의 와인 한잔(1주일에 와인 한병)이 심장마비, 뇌졸중, 협심증 등의 위험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와인 값도 비싼데 집에서 와인 담가 먹는 재미로 지루한 늦여름을 색다르게 날 수 있기 않을 까.
김정섭 기자 john@usmetr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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