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16일 메이저리그 통산 288승을 거둔 좌완 토미 존이 향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8일 뉴욕 양키스의 전통적인 행사 ‘Old Timers Day’에 건강상을 이유로 불참해 병이 깊음을 알 수 있었다. 방광암을 앓고 있었고 호스피스에 연명했다. ‘올드 타이머스 데이(양키스 같은 명문 구단이나 가능한 행사다)’에 불참하며 팬들과 구단에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다”며 SNS에 포스팅한 바 있다.
토미 존은 스포츠 의학의 역사를 바꾼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토미 존 서저리’로 더 유명하다. 흥미로운 점은 선수 이름이 붙는 고유명사화는 야구 종목이 유독 눈에 띈다. 루 게릭 병, 토미 존 서저리, 스티브 블래스 병, 멘도사 라인 등. 다른 종목도 선수 이름이 붙는 게 있지만 기술이나 규칙 등이다. 야구처럼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루 게릭(Lou Gehrig) 병
흔히 루 게릭 병 질환의 공식 명칭은 근위축성측삭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이다. 줄여서 ALS라고 부른다. 대뇌와 척수의 운동신경원이 선택적으로 사멸되어 온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퇴행성 질환이다. 아직은 치료가 없는 불치 병이다.
뉴욕 양키스 레전드 1루수 루 게릭이 ALS로 1941년 3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게릭은 2130 연속경기출장 기록을 세워 애칭이 ‘철인(Iron Horse)’이었다. 1939년 4월30일 워싱턴 세네터스(현 텍사스 레인저스)전이 2130연속경기 출장의 마지막 경기였다. 다음 경기 5월2일 디트로이트전에 양키스 캡틴 게릭은 조 맥카시 감독에게 “조! 나 벤치에 있을게(I’m benching myself, Joe)”라며 결장한다. 디트로이트 장내 아나운서는 “관중 여러분, 2130연속경기출장을 하는 동안 오늘 양키스 라인업에 처음으로 루 게릭이 빠졌습니다”라고 한다. 이에 타이거스 팬들은 기립박수로 연속경기 출장 기록을 세운 게릭에 감사했다.
출장을 포기한 것은 몸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 이후 몸은 쇠약해졌다. 원인을 몰랐다. 6월13일 병원에 입원했고 6일 동안 광범위한 조사 끝에 ALS 진단을 확정했다. 게릭의 36번째 생일에 통보됐다. 마비는 급속히 진행됐다. 병원은 6월19일 게릭의 병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구단은 이틀 후 게릭의 은퇴를 선언했다. 7월4일 양키스타디움에서 7만 여명 가까이 운집한 가운데 은퇴식이 거행됐다. 게릭은 여기서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야구판 게티즈버그 연설로 팬들에게 감동을 준다.
양키스는 게릭의 등번호 4번을 영구결번한다. 전 세계 스포츠 사상 영구결번의 시초다.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은 게릭을 특별 케이스로 1939년 헌액한다. HOF는 은퇴 후 5
년이 경과돼야 한다. 게릭은 양키스 한 유니폼을 입고 17년 동안 통산 타율 0.340, 홈런 493, 타점 1,995개를 남겼다. 1941년 6월2일 37새로 영면했다. 이후 근육이 수축되는 희귀병 근위축측삭경화증을 루 게릭 병이라고도 부르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는 2021년부터 6월2일을 ‘루 게릭 데이’로 지정해 이 병에 대한 경각심과 투병하는 환우들을 도우는 행사를 벌인다.
토미 존 서저리
토미 존은 1963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데뷔해 1989년 뉴욕 양키스에서 은퇴했다. 27년 동안 최장수 현역 생활을 한 놀란 라이언에 이은 두 번째로 긴 26년 활동했다. 1974년 LA 다저스 3년차였다. 7월17일 몬트리올 엑스포스전까지 13승3패 평균자책점 2.50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저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엑스포스전에서 3회 경기 도중 느닷없이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팬들과 동료들은 어떤 장비를 놓고 왔는지 알았다고 한다. 팔꿈치 통증으로 더 이상 던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때의 팔꿈치, 어깨 부상은 투수 생명 끝을 의미했다. 다저스의 팀닥터였던 프랭크 조브 박사는 토미 존을 설득했다. 존은 조브 박사를 신뢰했고 믿었다. 9월25일 스포츠 의학의 한 획을 그은 팔꿈치 인대 접할 수술을 집도했다. 이 수술은 반대편 쪽의 손목 인대를 잘라서 부상 부위를 감는다. 손목 인대가 2개 있어서 토미 존 서저리는 2회 가능하다. 류현진, 오타니 쇼헤이, 워커 뷸러 등이 두 차례 수술한 투수들이다. 성공 여부의 열쇠는 기나긴 재활 과정이다. 존은 수술 후 1976년 4월16일 애틀래타 브레이브스전에 등판했다. 19개월 만에 복귀였다.
조브 박사의 수술 덕에 수 많은 투수들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현역 생활을 연장하고 있다. 토미 존 이후 2600 여 건 수술이 진행됐다. 류현진을 수술한 닥터 닐 엘라트라체가 토미 존 서저리 부문에서 일인자로 통한다. 수술 후 오히려 구속이 빨라진다.
싱커가 주무기인 토미 존은 수술 전 124승을 거뒀다. 수술 후 164승으로 통산 288승 231패 평균자책점 3.34를 기록했다. 그러나 존은 HOF가 아니다. 그보다 승수도 떨어지고 평균자책점에서 3.90이나 되는 잭 모리스가 명전 회원에 가입한 것과는 대조를 이루는 장면이다. 미국야구기자단(BBWAA)은 명예의 전당 가입을 외면했다. 최종 지지가 31.7%에 그쳤다. 원로위원회도 아직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BBWAA나 원로위원회가 존의 명전 가입을 외면하는 이유는 통산 288승이 너무 밋밋하다는 것이다. 훈장(개인상)이 없다는 뜻이다. 수술 후 1977년 다저스에서 시즌 20승7패 평균자책점 2.78로 사이영상 2위에 오른 게 전부다. 올스타게임에는 4회 출전했다. MLB 역사상 가장 긴 시차를 두고 개막전 선발 투수로 등판한 기록은 있다. 1966년 시카고 화
이트삭스, 1989년 뉴욕 영키스. 시차가 23년이다. 사후에 원로위원회가 존의 상징성을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스티브 블래스 병 또는 증후군(Steve Blass Disease or Syndrome)
우완 스티브 블래스(84)는 1964년 데뷔해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10년시즌 활약했다. 은퇴 후 피츠버그 지역 방송 해설자로 활동했다. 1968년~1972년 5시즌 연속 두자릿수 승수를 작성했다. 1972년에는 19승8패 2.49로 생애 첫 올스타에 출전했고 시즌 사이영상에서 2위까지 올랐다. 19승을 거둔 이듬해 1973시즌 블래스는 갑자기 제구 난조를 보였다. 88.2이닝 동안 고의사구 포함해 88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게다가 몸에 맞는 볼만 12개를 범했다. 폭투는 9개. 시즌 3승9패 평균자책점 9.85를 기록했다.
1974시즌 스프링 트레이닝에 참가했다. 그러나 제구 난조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5경기에 등판해 5이닝을 던지고 볼넷 7개에 홈런 2개를 허용하고 현역을 마무리 지었다. 블래스가 원래부터 제구력이 부족한 투수였다면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라는 개념이 생기지 않았다. MLB에는 블래스와 같은 투수들이 있다. 예전 박찬호와 맞대결을 벌였던 강속구 투수 좌완 릭 앤키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마크 홀러스 등이 블래스 증후군으로 현역 생활을 이어가지 못한 경우다.
블래스 증후군은 투수 외에 2루수에게도 나타난다. 2루는 1루 송구 구간이 짧다. 갑자기 1루 타킷에 던지지 못한다. 이 역시 블래스 증후군이라고 한다. LA 다저스 신인왕 출신 스티브 색스, 전 뉴욕 양키스 척 노블락 등이 어느날 1루에 어처구니없는 송구로 블래스 증후군을 앓았다. 모두 2루수다.
멘도사 라인(Mendoza Line)
멕시코 태생 유격수 마리오 멘도사(75)는 1974년~1982년까지 3팀에서 뛰었다. 9년 통산 타율 0.215, 홈런 4, 타점 101개를 남겼다. 수비는 뛰어났지만 타격은 보잘 것 없었다.
멘도사 라인은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로 타율 2할 언저리를 기록하는 물방망이를 일컫는다. 이 용어가 굳어진데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레전드 3루수 조지 브렛 때문이다. 1980년 브렛은 1941년(0.406) 테드 윌리엄스 이후 최초의 4할 타율에 도전할 때였다. 4할에 미치지 못하고 0.390으로 시즌을 마쳤다. 이 해 MVP를 수상했다.
1979년(시애틀 매리너스) 멘도사는 타율 0.200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동료 톰 퍼시오렉과 브루스 박티가 낮은 타율을 놀렸다. 1980시즌 브렛은 슬로 스타트를 보였다. 5월30일까지 2할대였다. 이 때 슬로 스타트를 보인 브렛에게 상대 팀 선수들이 “조심하지 않으면 멘도사 라인 아래로 내려 갈거야”라고 조크를 한 게 ESPN 앵커 크리스 버먼
에 전달됐다. 버먼은 방송으로 멘도사를 언급하면서 야구 용어가 돼버렸다.
멘도사는 9시즌 통산 타율이 0.215다. 9시즌 동안 1할대 타율로 떨어진 게 5차례에 이른다. 그러나 수비만큼은 발군이었다. HOF인 브렛의 통산 타율은 0.305다.
야구에만 선수 이름의 고유명사화 되는 게 많은 이유는 장기레이스에서 펼쳐지는 온갖 뒷얘기와 미국 스포츠에서 역사가 가장 깊기 때문이다. 야구를 내셔널 패스타임이라고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문상열 스포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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