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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이 많은데, 왜 이 오케스트라는 산으로 가지 않았을까?

 

지휘자가 없는데도 더 완벽하다. 무대를 보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 지휘자가 없네?” 오케스트라라면 당연히 한 사람이 지휘봉을 들고 음악의 방향을 이끌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처럼 리더가 없으면 혼란이 생길 것이라 생각해 왔는데, 이 무대에는 오히려 단 한 명의 사공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단원 모두가 사공이었다. 지난 6 UCLA Schoenberg Hall에서 관람한 세종솔로이스츠의 연주는 나의 이런 상식을 단숨에 뒤집어 놓았다.

 

모두가 지휘자인 세종솔로이스츠 연주회

이 실내현악오케스트라는 연주가 시작되자 악장의 깊은 호흡만을 신호로 스무 개의 활이 마치 한 사람의 손처럼 동시에 움직였다. 절대적인 권력을 상징하는 지휘봉의 명령도 없었지만, 단 하나의 어긋남조차 허락하지 않는 완벽한 하모니가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나는 '어떻게 이런 연주가 가능할까?' 하는 놀라움 속에 눈과 귀를 집중하며 그들의 음악에 빠져들다가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이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단원들이 서로를 이끄는 솔로이스트들이라는 사실을!

내가 이 단체를 보며 우스갯소리로 추측해 본다면, "어설픈 지휘자에게 맡기느니 차라리 우리 모두가 지휘자가 되어 보자!"고 마음먹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오케스트라 연주자 친구들과 공연이 끝난 뒤 종종 지휘자 이야기를 하곤 했다.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면 "지휘자 때문에 연주가 더 엇나갔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마치 운전 중 경찰차가 나타나면 운전자들이 괜히 눈치를 보느라 프리웨이가 더 막히는 것처럼, "지휘자를 계속 의식하다 보니 오히려 호흡이 더 맞지 않는다. 차라리 지휘자 없이 우리끼리 연주하는 게 더 잘 맞았겠다", 며 웃고들 했었다. 물론 공연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날의 푸념 섞인 농담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날 세종솔로이스츠의 무대를 바라보며, 그날의 농담이 실제로 완벽한 음악이 되어 내 눈앞에 펼쳐져 버린 사실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세종 솔로이스츠.jpg

 

최고 권력자인 지휘자의 방대한 역할

지휘자, 특히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권력은 상당히 방대하다. 많은 연주자에게 템포와 시작점을 제시하고, 작품 전체의 해석과 균형을 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대규모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는 수많은 악기의 템포와 음량을 조절할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소리를 지휘자 자신만의 해석으로 통합하는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절대 권력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적 권한이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집중될 때, 탁월한 성취와 함께 긴장과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20세기 전반의 유럽 음악계에서는 거장 지휘자의 강력한 해석과 카리스마를 중심으로 한 오케스트라 문화가 두드러졌다. 특히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권위와 질서를 중시하는 시대적 분위기에서 지휘자는 단순히 박자를 젓고 템포를 맞추어 음량을 조절하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의 해석에서 더 나아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주 방식뿐 아니라 그들의 숨소리까지도 좌우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카라얀과 토스카니니였다. 이들은 불세출의 음악성과 카리스마로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명연주를 남겼지만, 동시에 완벽주의와 권위적인 리허설 방식으로 단원들을 긴장시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조지 셀 역시 엄격한 리허설 때문에 '독재자'라는 별명까지 얻었지만, 그 결과 지방 악단에 불과하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미국 빅 파이브 오케스트라의 하나로서 세계 정상급의 앙상블로 성장시킨 바 있다. 그래서 완벽한 음악은 만들어졌지만, 연주자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우리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 거장 지휘자들이었지만, 함께 무대에 섰던 일부 연주자들에게는 그 지휘자들의 강한 리더십이 오히려 연주자들의 음악적 자유를 제한하고 상당한 심리적 부담을 안겨주었다는 회고들도 적잖이 남아 있다.

 

처칠도 부러워한 오케스트라 지휘자

2차대전 당시 유명 정치 권력자이었던 윈스턴 처칠의 말로 널리 알려진 일화가 있다. 그가 가장해보고 싶은 직업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휘자가 손가락 하나, 지휘봉 한 번 움직이는 순간마다 수십 명의 연주자가 일제히 호흡을 맞춰 연주를 시작하고, 그만의 해석으로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을 실현하며 하나의 멋진 작품을 완성하는 모습에서, 그 한 사람이 행사할 수 있는 리더십과 영향력은 어떤 정치가의 권력보다도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일화가 널리 전해진다는 것 자체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얼마나 강력한 권력을 실현하는지를 보여 준다.

 

처질 상식을 뒤엎는 오케스트라

그러나 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는 처칠의 상식을 뒤집었다. 음악사에서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파격을 넘어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전쟁으로 상처 입었던 유럽에 음악으로 아름다움을 선사한 이 무지치 (I Musici), 미국식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실현한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 (Orpheus Chamber Orchestra), 그리고 세계 각국의 최정상급 젊은 연주자들을 모아 결성한 세종솔로이스츠 (Sejong Soloists)까지. 이 세 오케스트라의 연대기는 음악적 소통의 시대적 변화를 보여준다.

위의 세 오케스트라 연대기의 서막을 여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되지 않은 1951, 로마의 젊은 연주자 열두 명은 거장 지휘자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음악가들 (I Musici)’이라는 공동의 이름으로 무대에 섰다. , 특정 스타가 아니라 모든 연주자가 음악을 만드는 주인공이라는 뜻이다. 이 무지치는 비발디의사계를 세계적인 레퍼토리로 널리 알리며 바로크 음악의 부흥에 크게 기여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비발디를 이렇게 친숙하게 듣는 데에는 이 단체가 연주한 공이 매우 크다. 지휘자 없이 악장이 리더 역할을 하는 그들의 아름다운 이탈리아 특유의 레가토적으로 노래하는 표현은 한마디로, ‘벨칸토를 현악기들로 우아하게 노래하는 음악이라 부르고 싶다.

 

무지치오르페우스 챔퍼 오케스트라

이 무지치가 지휘자 없는 앙상블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1972년 뉴욕에서 첼리스트 Julian Fifer가 젊은 뉴욕 연주자들을 모아 오케스트라 음악을 실내악처럼 연주하려는 의도로 창단된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Orpheus)'는 리더십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지 않고 단원들이 함께 나누는 방식으로 발전시켜 수평적 리더십을 완성하였다.

오르페우스에서는 작품마다 리더십을 맡는 단원이 달라져 작품과 필요에 따라 핵심 연주자 그룹이 준비와 리허설을 이끌고, 단원들이 토론하며 해석을 함께 만들어 연주자들은 해석과 표현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눈다. 누구도 권한을 독점하지 않지만, 그만큼 누구도 책임에서 물러설 수 없다. 이들은 지휘자를 없앤 것이 아니라 리더십을 나누었고, 명령에 따르는 오케스트라에서 서로 설득하고 책임지는 음악 공동체로 바꾸었다.

그래서음악 해석을 함께 만든다, 작품마다 리더가 달라질 수 있다, 권한을 독점하지 않는다, 그리고 책임도 함께 진다!’ 라는 수평문화와 토론 중심으로 음악을 완성하는 '오르페우스 프로세스(Orpheus Process)'는 음악계를 넘어 기업 조직의 리더십 연구에서도 관심을 받을 만큼 독창적이었다.

그들의 철학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Conductorless Orchestra"이다. 하지만 단순히 지휘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리더십 자체를 공유하는 것이다. 지휘자를 없애기 보다 권력을 나누었다. 그래서인지 오르페우스 오케스트라의 음악 특징은 정확성 긴장감 실내악적 호흡으로 인한 민주적인 앙상블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세종솔로이스츠

그리고 1994년 뉴욕에서 줄리아드에서 재직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강효(Hyo Kang) 교수의 주도로 창단된 세종솔로이스츠는 한국을 뿌리에 두고 세계를 무대로 도약한 지휘자 없는 현악 앙상블의 등장이다. 이들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잇는 정교하면서도 맑고 강인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앞선 이 무지치와 오르페우스가 열어 놓은 '지휘자 없는 무대'의 가능성을 오늘날 가장 세련된 글로벌 앙상블로 발전시켰다. 미국과 한국은 물론 아시아 여러 나라와 유럽 등 세계 8개국 출신의 최정상급 젊은 연주자들이 국경을 넘어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현대 음악의 새로운 풍경이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 악단은 단순한 연주단체에 머물지 않는다. 세계적인 젊은 음악가를 발굴하는 것을 중요한 사명으로 삼는데, 이미 많은 단원들은 뉴욕 필하모닉과 메트로폴리탄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비롯하여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악장 및 수석 연주자로 진출하고 있으며 다시 돌아와 함께 연주하기도 한다. 600년 전에 이미 정간보라는 악보를 발명하여 현재 세계 최고의 음악기보법이라는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세종대왕의 이름을 내건 이 악단은 한국 문화와 세계 클래식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실내악적인 긴밀한 호흡과 현대음악의 적극적인 위촉 및 세계 120여개 도시에서 700회가 넘는 연주횟수를 늘려가며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세계를 개척하고 있다.

 

서로를 깊이 경청하는 오케스트라

그날 UCLA 무대에서 내가 들은 것은 그냥 단순히 획일적으로 잘 맞는 정도의 훌륭한 연주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 다른 개성과 배경을 지닌 연주자들이 상대의 숨결에 귀 기울이며 하나의 호흡으로 연결되는 살아 있는 음악이었다. 그 순간 나는 '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를 본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가장 깊이 경청하는 오케스트라를 보고 있었다.

이 무지치에서 오르페우스를 거쳐 세종솔로이스츠로 이어지는 반세기가 넘는 연대기에서 내가 본 것은 단순히지휘자 없는 음악의 역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 다른 개성이 어떻게 하나의 목소리로 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아름다운 소통의 기록이었다. 이 무지치가 이탈리아 현악의 전통과 벨칸토의 아름다움을, 오르페우스가 민주적인 리더십과 집단적 해석을, 세종솔로이스츠가 새음악 개척과 국제 교류를 통한 세계적 앙상블을 보여 주었다면, 이들을 하나로 이어 주는 것은한 사람이 지휘하는 음악보다함께 만들어 가는 음악을 향한 믿음이었다. 이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없다고 해서 질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더 높은 수준의 책임과 신뢰 위에서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좋은 앙상블은 자신의 소리를 크게 내고 주장하는 경쟁이 아니라 상대의 소리를 들으며 함께 음악을 하나로 빚어 가는 과정이며, 명령으로 소통하기 보다 서로를 경청하는 노력이 더 어렵고 위대한 재능임을 보여 준다.

공연이 끝난 뒤 문득 연주가 시작되던 그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지휘자의 그 어떤 권위적인 몸짓도 없이 악장의 짧은 숨결 하나에 맞춰 스무 개의 활이 한 몸처럼 움직임을 시작하던 그 장면 말이다. 그날 나는 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를 본 것이 아니라, 서로를 끝까지 경청하는 스무 명의 솔로이스트를 보았다. 그들이 들려준 가장 아름다운 선율은 현악기들의 음색뿐만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숨결이었다.

 

 

김 양희 음악박사

Director of Los Angeles Opera Association

클래식 음악 및 오페라 해설 강사

음악 교육자

 

오페라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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