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nish Dancers’digital art by Bruce Thacker.
나는 꽤 오랜 시간 가르치는 일을 해왔다. 미술대학을 다니면서 방학 때마다 아이들 그림지도를 시작으로, 대학원 때는 캠퍼스 내의 부속 중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일 한 적이 있다. 그 이후에도 대학에서 미술관에서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그런 이유로 그림 그리는 일과 가르치는 일은 나의 일상이 되었고, 오랜 시간의 경험들은 값진 추억과 함께 내 그림 인생의 선물로 남아있다. 반복되는 훈련으로 나 스스로 가르치는 방법을 찾게 되었고, 그 실전의 노하우는 덤이 되었다.
그림을 잘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마음 가는 데로 자유롭게 그리면 돼요”라는 답을 준다. 다소 성의 없고, 추상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결국엔 그 말이 맞는다. 대부분 그림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첫마디가 “난 그림을 그릴 줄 몰라요”, “그려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라며 자신감 없음을 호소한다.
“지나친 욕심·강박감 버리고 스스로를 즐겨라”
그림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근사한 그림을 그릴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만큼 결과물이 나와주질 않으니 애가 타는 것이다.
모든 학습에는 기본기를 착실히 익혀야 함이 요구되지만, 그 외에 끊임없는 열정과 노력은 그림 그리는 일에도 예외일 수 없다. 그깟 그림 나도 그리면 되지 하고 얕보다가 모두 혼쭐이 나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렇다. 그림은 생각만큼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남이 그려놓은 그림 평은 하기 쉬워도 막상 내가 하려면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손으로 무언가를 쥐는 본능이 있다. 자라면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손에 뭔가를 쥐고 여기저기 낙서를 한다. 그게 바로 그림 그리기의 시작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선을 긋고 형상을 만들고 또 색을 입힌다. 이해할 수 없는 자기만의 화면을 구성하며 인간의 최고단계 욕구인 “표현”이란 것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재미를 느끼면서 낙서 놀이를 시작한다. 아무런 계산 없이 그린 놀이여서 순수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미 스스로 그림 그리는 방법을 습득한 것이다.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미술 시간이 교과과정의 일부여서 전문적이진 않아도 폭넓은 교양으로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전문가가 되려는 경우를 제외하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 개개인의 소질과 흥미에 차이는 있지만 간단한 그림 정도는 그릴 줄 안다. 문제는 그다음. 자신의 그림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은 비교평가를 한다. “내가 제일 못 그려서…” 절대로 도움 되지 않는 자기비하를 한다. 테크닉의 정도나 노력해서 얻어진 기량에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림은 공식화된 답을 원하지 않음으로 각자의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좀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 표현된 자신의 세계가 값진 것임에 자랑스러워했으면 한다. 그림은 테크닉 자랑대회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거다.
카와이대학에서 미술을 강의할 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시간은 작품평가 시간이었다. 같은 주제 하에 그림이 완성되면 둥그렇게 모여 앉아 자유롭게 그림에 대한 설명과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이다. 본 대로 느낀 대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영감을 얻기도 하고 없던 아이디어도 생기게 된다.
좋은 그림을 그리려면 본인 스스로 자유로워야 한다. 잘 그려야 한다는 지나친 욕심과 강박관념을 버리고 즐겨야 한다. 예술교육은 즐길 수 있을 때 최상의 몫을 다한다. 그런 반복적인 훈련을 꾸준히 하게 되면 좋은 그림은 저절로 되는 것이다.
미술계의 거장 피카소도 “백 장의 그림을 그려야 운 좋게 한 장의 좋은 그림이 나온다”라고 했는데, 하물며 우리가 처음부터 걸작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많은 연습을 통해 다져진 기본기와 예지력과 재능이 보태지면 금상첨화다.
어떡하면 그림을 잘 그릴까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나 자신이 꾸준한 노력을 해왔나 반성이 필요한 거다. 못하는게 아니라 안 한 거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먼지에 덮여있는 화구를 꺼내어 시작해 보자. 자신감을 갖고 시작하면 기대 이상의 그림이 나를 반길지도 모르니까… 그림은, 내가 노력한 만큼 보이는 내 마음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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