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실 발코니에서 바라본 낙조. 붉은빛을 뿜어내던 태양는 저물지만 환한 하늘빛은 밤 11시가 넘을 때 가지 계속됐다.
4,200명의 승객을 싣고 7박 8일 알래스카 바닷길을 달린 크루즈 선. 첫 기착지 알래스카 스티카에 정박해 있다.
빙하의 고장 알래스카<7박 8일 크루즈 여행기>
팬더믹이 무색한 4,300 승객 태운 거침없는 항해
설산과 냉대림이 해안을 따라 줄지어 펼쳐진 장관
11시가 돼도 훤한 빛이 남아 있는 신비로운 체험
오랜만의 나들이다. 팬더믹으로 꼼짝없이 묶인 지 꼬박 2년 6개월 만이다.
선 듯 나서지 못했다. 스쳐도 걸린다는 코비드의 기세가 아직 등등한데 구태여 사람 몰리는 여행길을 떠나야 할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크루즈 여행을.
와이프 환갑 기념 겸 교사인 두 자녀의 여름 방학 시작, 딸 생일 등등 다양한 가족 이벤트를 계기로 1월부터 준비한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이라서 혼자 거절할 수도 없었다. 6월 20일 시애틀을 출발해 6월 27일 다시 시애틀로 돌아오는 7박 8일 크루즈 일정이다.
팬더믹 폐쇄령(2020년 3월 15일) 직전인 2020년 1월 4일, 3박 4일의 멕시코 앤시나다 크루즈 이후 2년 6개월 만의 평생 두 번째 크루즈 나들이다. 가족 이벤트로 친인척 28명이 함께 다녀왔던 직후 온 가족이 고열을 동반한 감기로 2~3일을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함께 갔던 몇 조카들도 같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코비드 19 감염이 아닌가도 싶다. 당시만 해도 코비드는 먼 나라 이야기인 줄만 알았을 때였으니까.
생전 처음 가보는 동토의 땅 알래스카. 알래스카는 “하늘로 보고 땅으로 보고 바다로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빙하와 에스키모인, 얼음집 등등 온갖 순진한 상상이 겹치면서 ‘겁 반 기대 반’으로 가족 4명이 짐가방을 싸 들고 집을 나섰다.
20일 아침 7시 30분, 예정보다 30분 늦게 손가방과 백팩 하나씩 챙겨 차를 몰고 LA 공항으로 출발했다. 오전 9시 30분 시애틀행 비행기. 시애틀서 크루즈 탑승 마감 시간은 오후 2시 30분. 빠듯하다. 비행기 취소 사태가 속출한다는 뉴스에 은근히 걱정도 됐다.
미리 예약해둔 공항 인근 파킹랏(8일 주차비 185달러)에 주차하고 셔틀로 부지런히 탑승구로 달렸다.
비행기는 2시간 30분 후 시애틀 공항에 도착했다. 전철(1호선)을 타고 다운타운으로, 또 24번 버스로 바꿔 타고 시애틀 항구 초입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5분. 배까지 도보로 5분 거리여서 우리에게 할당된 승선 시간 오후 2~2시 30분에 맞추기에 충분했다. 나만 빼고 3명은 여유 있게 승선했다.
승선을 위해서는 여권과 백신 접종 카드, 티켓, 2일 이내 코비드 음성 테스트 결과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내게는 코비드 음성 테스트 결과가 없었다. 이틀 전인 토요일(18일) 오후 동네 약국 체인점 CVS에서 테스트를 받았지만 승선 시간까지 내 결과만 나오지 않았다.
크루즈 터미널 옆 간이 검사소에서 거금 100달러 주고 받은 즉석 테스트 결과지를 들고 부지런히 배에 올랐다.
크루즈 선은 오후 5시 30분 약간의 현기증을 일으키며 바다로 향했다.
크루즈 안은 ‘인산인해’다. 16층 높이의 4,800명 대형 유람선에 4,300명이 탑승했다고 한다. 곳곳이 사람이다. 쏟아져 나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걷기 힘든 노부부부터 갓난아기까지 다양한 연령의 다채로운 지역과 국가에서 온 지구촌 사람들이 빼곡히 모인 다인종 다세대 전시장과 같다.
배는 그렇게 캐나다 땅을 오른쪽으로 두고 연안을 따라 알래스카까지 7박 8일의 일정으로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힘차게 출발했다.
오후 5시 15분 미리 예약해둔 정식 식당에서 오붓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앉아 식사를 할 식당이다.
직원들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하다. 담당 웨이터 ‘앤소니’와 보조 웨이터 ‘매리언’ 모두 필리핀계 승무원이다. 서비스가 프로다.
티켓값에 모든 서비스에 대한 18% 팁이 포함돼 있다. 여기서 먹고 마시는 음식 그리고 룸서비스 등 모든 서비스에 팁이 포함된 가격이다.
추가 봉사료가 필요 없다. 하지만 이들의 서비스는 주머니를 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살갑다. 마지막 7일째 한꺼번에 감사의 마음을 표해야 겠다.
빙하 계곡으로 들어서는 초입에서 빙하 대신 작은 빙산 조각을 감상하는 승객들.
기후 변화로 저만큼 물러난 빙하가 아쉬워
친절과 청결함에 피곤 잊은 1주일
여행 중 응급차와 헬리콥터에 실려 가는 노부부들도
바람을 가르며 갑판을 뛰는 기분도 일품
여행도 건강이 허락해야 갈 수 있어
둘째 날(21일)
배는 캐나다 연안을 따라 하루 종일 바닷길을 갈랐다. 날씨는 흐리고 때때로 이슬비가 뿌린다. 발코니 커튼을 열자 멀리 군데군데 흰 눈에 덥힌 산들이 해변을 따라 줄지어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옅은 안개를 뚫고 차갑게 다가왔다. 다소간의 출렁임을 느낄 수 있었지만 멀미할 정도는 아니다. 오늘 하루는 배에서 지내야 하니 배 구경을 나섰다.
2층 병원과 선실부터 16층 운동실까지 어느 한 곳 놓칠세라 구석구석 눈에 담아 뒀다. 3층 카지노, 4층과 5층 공연장, 극장, 바, 커피숍, 식당과 24시간 피자 식당 등등, 14층 이상 뷔페식당부터 야외, 실내 수영장, 15층 암벽 타기, 서핑, 스카이 다이빙 체험 공간, 스파, 고가 사다리 전망대 그리고 조깅 트랙 등등. 필요한 것 빼고는 다 있는 ‘원스톱’ 위락 공원이다.
반바지를 챙겨 입고 15층 갑판의 조깅 트랙을 달려봤다. 2.91바퀴를 돌면 1마일이라고 적혀 있다. 흩뿌리는 이슬비, 뱃머리를 향해 달릴 때마다 불어오는 맞바람을 30도 각도로 몸을 기울여 돌파해 보려 했지만 너무 추워 포기하고 실내 운동실로 들어가 자전거 패달만 열심히 밟았다.
배는 첫 기착지인 알래스카 초입 시트카(Sitka)를 향해 밤새 달려갔다. 밤새라는 표현이 무색하다. 일몰 시각은 10시 30분. 집에서라면 이미 깜깜한 어둠이 깔린 시간이다. 하지만 여기는 아직 훤한 대낮이다. 북으로 올라갈수록 일몰 시각이 길어진다. 내일 일몰은 11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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