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바다’ 내려 보며 무의도식 환상 여행.
1,200마일 쉬지 않고 달리는 선상의 추억.
가격 싸고 즐길 것 많아 자녀동안 가족 여행 최적.
쉴새 없이 먹고, 걷고 하루 2만5,000보는 기본.

가볍게 표현한다면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생활 전선에서 피곤에 찌든 나를 위해 투자하는 귀중한 시간을 가져 보자. 집에서는 누리기 힘든 시간일 것이다. 주변 환경이 그냥 놔두질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방법은 어떨까. 주말 크루즈. 그것도 ‘리포지셔닝’ 크루즈다.
여름 한철 알래스카 유람에 나섰던 배들이 여름 시즌을 마치고 추운 겨울에 따듯한 남쪽으로 내려온다. 멕시코로, 하와이로, 호주로, 카리비안으로…
그냥 빈 배로 내려오면 연료비에 1,000명이 넘는 승무원 유지비용일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빈 배로 내려 오느니 승객을 태우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다.
위치를 바꾼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리포지셔닝’, 우리말로는 한다면 ‘위치 재배치’다.
여러 곳을 들려 승객들에 하선과 관광의 즐거움을 주는 일반 크루즈와는 달리 ‘쉬지 않고 목적지로 달린다’ 그래서인지 가격도 싸다. 발코니 룸에 우리 부부 경비는 팁까지 포함해 800달러. 운전하지 않아도 되고 식당 찾아 다닐 것도 없고, 피곤하면 자고…
배안에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무의 도식’, 푸른바다 내려다보며 시름 날려버리고 ‘멍때리기’에 안성맞춤인 여행이다.

뱅쿠버서 LA까지 3박4일 주말 코스
지난 9월 중순 주말 3박4일 코스의 ‘리포지서닝’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 캐나다 뱅쿠버에서 LA 항구까지 중간 기착지 없이 1,200여 마일을 내달리는 크루즈다.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는 대형 크루즈 안에서 세상 만사 다 잊어버리고 꿀 같은 나만의 휴식 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주말 여행이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아무도 방해할 사람 없다. 배안에는 온갖 볼거리들이 넘친다. 뮤지컬부터 광란의 댄스 파티, 밴드, 피아노 등 쫓아다니며 구경하기도 벅찬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들이 즐비하다. 물론 싫으면 안보면 된다.
배안에는 어린 자녀들을 동반 부부들이 많다. 아이들 길 잃어버릴 걱정 없고 수영장에 놀이기구 등등 다양한 즐길 거리로 가족 단위 승객들이 많은 것 같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크루즈 여행
LA에서 금요일 아침비행기로 캐나다 뱅쿠버로 날아갔다. 주말 여행이므로 아내와 짐가방 없이 여권과 간단히 챙겨 넣은 백팩만 짊어 졌다. LA항 도착 시간은 월요일 오전 8시.
크루즈의 뱅쿠버 항 출발 시간은 오후 4시. 늦어도 30분 전에는 항구에 도착해야 한다. 시간 계산을 착각해 현지 도착 시간이 오후 1시인 비행기를 예약했다. 혹시 연착되면 낭패를 볼 수 있는 아슬아슬한 일정이다. 다행히 연착 없이 정시에 도착했다.
서둘러 입국수속(3분도 걸리지 않았음) 마치고 나오면서 항구까지 가는 교통편을 찾았다. 크루즈에서 보낸 전용 버스는 1인당 50달러. 만만치 않았다. 집에서 LA 공항까지 우버 비용으로 이미 80달러를 썼다. 우버를 탈까, 아니면 전철을 탈까. 잠시 고민 끝에 전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공항서 전철역까지 걸어서 2분. 전철을 타고 항구까지 25분이다. 무인기에서 전철 티켓을 구입했다. 공항 안내원의 말을 잘못 이해하고 4정거장 거리내의 1구역(zone 1) 11.50달러 티켓을 두장 뽑았다.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는 12개 정거장을 지나야 하는 2구역(zone 2)이다.
정거장을 나설 때 추가 요금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빠져 나갈 때 아무 제재도 없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절반을 절약한 셈이다.
항구 전철역에서 한참을 배 찾아 헤맸다. 안내판이 애매해 길을 건너고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거리 순찰원(경찰은 아닌듯)에 물어 건물 뒤쪽에 정박한 거대한 크루즈 선을 발견했다. 시간은 오후 2시. 내가 신청한 승선 시간은 2시30분-3시. 충분한 시간이다.
항구에는 내가 탈 배와 또다른 선사의 리포지셔닝 크루즈가 정박해 있다. 알래스카 여름 관광을 마치고 내려가는 선박이다. 서둘러 여권 확인, 예약 확인 절차를 마치고 크루즈에 올랐다.



망망 대해에 시름을 내 던지고
매우 낯이 익은 배다. 팬더믹이 막 끝나갈 무렵, 결혼전 아들과 딸, 그리고 우리 부부가 함께 알래스카 유람에 나섰던 크루즈와 같은 기종의 배다. 반갑다.
배정된 발코니 룸에 백팩을 내려놓고 24시간 문을 여는 피자와 스낵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마쳤다. 5시반부터 저녁이 제공되므로 가능한 적게 먹고 저녁을 배불리 먹겠다는 생각이었다. 예약 시간이 오후 5시였다고 생각했지만 식당 앞에 섰더니 우리 시간은 오후6시30분부터란다.
배안에는 식당이 여러 곳 있다. 예약 없이 즐기는 14층 뷔페식당을 시작으로 예약을 받는 곳까지 7곳이 운영된다. 예약을 받는다고 해서 이용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줄서고 기다리면 빈 예약 좌석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뷔페 식당에서 마음껏 온갖 나라들의 음식과 음료를 골라 먹느냐, 아니면 웨이터, 웨이트레스들의 서빙을 받으며 식사를 하느냐의 차이다. 팁도 없다. 나는 뷔페 식당을 원하지만 와이프는 예약 식당을 선호한다.
서빙하는 웨이트와 웨이트레스 대부분은 동남아인들이다. 필리핀에 있는 유람선 학교를 나와 크루즈 선원 소개 에이전시를 통해 배를 탄 사람들로 영어는 기본이고 매우 친절하다. 항상 웃고 승객이 원하는 주문은 군말하지 않고 들어준다. ‘고객은 왕이다’를 실감한다.
이들은 6-7개월간 배에서 생활한다. 에이전시가 계약을 마치면 매 여행 승객들의 평점에 따라 재계약을 해야 하므로 친절은 이들의 ‘밥줄’이며 ‘돈줄’이다.



선상 만찬
다양한 음식이 식탁에 오른다. 이번 크루즈의 셰프는 인도네시아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지 쌀죽과 월남국수도 갖췄다. 그리고 고기와 생선, 야채, 과일 등 음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반쯤 먹고 다른 음식 가져와도 탓하는 사람 없다. 매우 낭비적이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없는 것이 없다. 식사 시간은 보통 3시간. 실컷 먹고 운동하고 또 와서 먹고.
우리는 15층 높이의 배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모두 계단을 이용해 걸었다. 식당갈 때나 갑판 갈 때 쇼 구경 갈 때 모두 걷는다.
식사를 마치면 곧바로 갑판으로 향한다. 한바퀴 도는데 0.27마일, 4바퀴 돌면 1마일이 조금 넘는다. 보통 1시간은 걷는다. 다행히 흐린 날씨가 계속돼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어 시원하게 걸었다. 하루 2만5,000보는 기본이다.
식사후 운동을 마치면 노곤하다. 선실로 들어가 눕는다. 발코니 문을 열면 망망대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들어온다.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오수를 즐긴다. 배의 요동은 거의 없다.
시장기가 감돌면 또 식당으로 달려가면 된다. 그리고 또 걷는다.
배 곳곳에서 파티가 열린다. 뮤지컬, 재즈, 팝, 댄스파티 등등. 입맛대로 보다가 피곤하면 다시 방으로…

LA 대중교통 점수는
주말을 보내고 나니 벌써 LA항에 도착하는 시간이다. 월요일 오전 8시. 예정 도착 시간보다 1시간 늦었다. 가지고 들어간 짐이 백팩 뿐이어서 가장 일찍 배에서 내린다고 서둘렀는데도 하산 순서가 한 200번째쯤 되는 것 같다. 배에서 내려 육지에 발을 디뎠다. 땅이 출렁댄다. 아직 내 중심이 물위에서 땅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서둘러 빠져나와 우버를 눌렀다. 대기 시간은 1시간으로 나온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 2시간이다. 올림픽을 앞에 둔 LA의 대중 교통시스템은 엉망이다. 뱅쿠버 공항에서 항구까지 전철로 연결되는 캐나다와 대조된다. 택시줄에 합류했다. 예상외로 30분만에 택시에 올랐다.
그많은 택시들이 다 어디로 갔을 까. 아무 택시나 항구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한다. 항구와 계약을 맺은 택시만 들어오는데 LA 항구에 손님 1명당 일정 수수료를 내야 한다. 한 남성이 택시에 탑승하는 승객들의 수를 세어 적는다. 계약이 없는 택시를 타려면 항구 밖으로 걸어나가야 한다. 집까지 요금은 70달러.
‘홈 스윗홈’ 세상이 집처럼 좋은 곳은 없다. 4일동안 보지 못한 두마리 개들이 펄펄 뛰며 반긴다. 우리 부부를 이렇게 기쁘게 반겨주니 기쁘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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