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남가주 아이스하우스 캐년
호랑이의 힘찬 기상으로
희망찬 한 해가 되시기를
산에는 희망이 있어 좋다. 내딛기 힘든 무거운 발걸음도 목적지에 다다르면 날개 달린 듯 내달린다. 고지를 향한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씩 옮기는 인내의 시간이 아깝지 않다. 숨을 몰아쉬면 폐부에 파고드는 고산의 공기가 한없이 신선하다. 다리의 통증도 어느덧 환희로 바뀐다. 오를 목적지가 있기 때문이다. 고지 위에서 손짓하는 희망이 기다리고 있다. 확 트인 발아래 무한한 세상이 펼쳐진다. 삼라만상이 내 발아래다.
임인년 새해다. 팬더믹의 버거운 시간을 보내고 희망의 빛줄기를 따라 호랑이처럼 내달리는 한 해의 시작이다.
남가주에 오랜만에 폭우가 쏟아진 12월 29일. 남가주의 뒷산 마운틴 볼디 남쪽 아래 아이스하우스 캐년을 올랐다.
새하얗게 펼쳐진 험산의 등산로에서 한없이 쏟아지는 눈송이들이 포근하고 정겹다. 얼마 만에 맞아본 눈이던가.
가뭄과 팬더믹으로 뒤숭숭한 한해의 끝자락에서 마주 선 ‘설산’의 정취가 신선하고 아름답다.
해발 5,000피트를 시작으로 눈길을 따라 목적지인 7,600피트 아이스하우스 새들까지 3.6마일. 오르는 길 곳곳에서 바람과 눈, 그리고 끝없이 펼쳐지는 눈꽃의 장관이 우리를 맞이했다.
타박타박 2,600피트를 오르고 또 오르면 세상의 온갖 잡념이 눈 녹듯 사라진다. 눈이 오는 날이면 눈 맞이하러 설산을 찾으리라. 임인년 새해의 벅찬 희망이란 꿈을 안고 말이다.
아이스 하우스 캐년은 산을 좀 안다는 한인 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친숙한 등산로다. 힘들지도 않고, 가파르지도 않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곳. 초·중급 등산객이라면 누구나 즐겨 오르는 남가주의 뒷동산 정도라고 할까.
LA 북쪽 병풍처럼 펼쳐지는 앤젤리스 내셔널 포리스트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물 좋고 산세 좋은 최고의 주말 하이킹 코스 중 하나다. LA에서 40분 거리. 오렌지카운티로부터 운전으로 1시간 떨어진 캐주얼 하이커들의 천국이다. 여름이면 쏟아지는 계곡물에 발 담그고 노는 남가주 주민들로 북적인다. 남가주판 정릉 계곡이다.
초입부터 계곡 물길 거슬러 오르는 등산로가 1마일. 맑고 투명한 물줄기가 오크나무, 단풍나무 사이로 넘실대듯 쏟아진다. 계곡물을 지나면 바위와 돌들이 뒤엉켜진 자갈길의 색다른 등산로가 펼쳐진다.
간혹 운동화를 신고 등산했다가 울퉁불퉁 돌길에 밑창이 떨어져 난감해하는 초보 등산객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보통 뒷동산은 아니라는 증명이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식생이 달라진다. 활엽수에서 침엽수로. 양옆으로 펼쳐지는 소나무 군락을 바라보며 꼬불꼬불 산길이 가지런히 펼쳐진다. 오른쪽으로 가파른 낭떠러지도 보인다.
시원하게 불어주는 고마운 바람이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준다. 동심의 세계가 이런 곳인가 싶다.
그렇게 오른 길이 3.6마일. 젊은이들의 빠른 걸음이라면 물 몇 모금에 쉬지 않고 걸어 2시간. 초 중급은 넉넉잡고 3시간 등반 코스다. 하산까지 감안한다면 3시간 반에서 5시간 반. 공원 관리 측은 왕복 7.2마일, 등반서 하산까지 4시간 반을 권장한다. 도중에 산을 돌아 1마일을 더 가는 샛길도 있지만 인적이 많지 않아 초보자는 삼가 하는 것이 좋다.
계곡의 설경을 감상하는 7.2마일 겨울 산행
힘들지만 어렵지 않은 남가주 최고의 등산로
가슴 뻥 뚫리는 눈꽃 장관
새하얗게 펼쳐지는 별천지
겨울 눈길 등산
29일 아침. 정오부터 눈 소식에 들뜬 마음으로 파킹장에 도착했다. 물과 간식을 잔뜩 챙겨 담은 배낭을 둘러메고 둔탁한 방한 등산복을 챙겨 입은 채 출발한 시간은 오전 10시. 예정보다 1시간 늦어 걱정이 앞섰다.
폭설이 내리면 하산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기도 하지만 벌써 6명이 겨울 산행하다 조난을 당했다는 뉴스로 긴장의 끈을 조이게 했다.
12월 초 이곳을 등산하던 30대 젊은 남성이 아이스하우스 캐년 새들 인근에서 실족으로 조난을 당했다는 기사가 LA 타임스에 실렸다. 좁은 등산로에 쌓인 눈길을 잘못 밟아 150피트를 미끄러져 내리면서 중상을 입었다는 내용이다. 다행히 이틀 전 같은 장소 조난자가 떨어뜨린 셀폰을 발견해 기적처럼 살았다는 기사다.
조난자 대부분은 젊은 나이 등산객이다. 미끄러운 눈길을 가기 위해 등산화에 부착하는 미니 스파이크(트램폰)를 신었지만 좁은 등산로 옆을 잘못 밟아 낙상했던 것. 산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얕본다면 커다란 재앙으로 되돌아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5년 만에 밟아본 눈길 등산로
눈 내리는 겨울이면 초입 파킹랏이 흰 눈에 쌓여 주차 공간 찾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눈이 계속되면 자동차 바퀴에 눈이 쌓여 빠져나가기도 힘들다. 스노우 체인이나 4륜 구동이 아니면 눈 속에 바퀴가 빠질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날 주차장에는 쌓인 눈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가뭄이 심해 적설량도 많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본보 유재일 기자와 산을 자주 가는 허수무 씨, 그리고 나, 3인의 겨울 산행. 눈길 등반은 5년 만에 처음이다.
잿빛 하늘로 변하면서 싸라기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앞서가는 일행의 배낭과 모자, 어깨가 눈발로 하얗게 변해갔다.
산 계곡은 이미 며칠 전 쏟아진 두터운 눈으로 하얗게 치장을 한 상태다. 콸콸 쏟아지는 계곡물 옆으로 눈 덥인 등산로를 따라 조금씩 걸음을 옮긴다. 오를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설산의 풍경이 장관이다. 오랜만에 보는 눈꽃 축제. 나뭇가지에 일렬로 두텁게 내려앉은 눈, 바람이 스치면 우수수 눈덩이가 쏟아진다. 눈발이 제법 굵어져 간다. 그래도 아직 함박눈은 아니다. 갓 내린 눈이어서 아직 얼지는 않았다. 발로 밟힐 때마다 터져 나오는 눈길의 뽀드득 소리가 듣기에 즐겁다.
눈꽃 만발한 계곡의 장관
초입에서 1마일 오르면 ‘챕만’등산로(Chapman Trail) 표지판을 만난다. 왼쪽은 새들로 돌아가는 ‘시다그로브 등산로 캠프’(Cedar Grove Trail Camp)다. 하지만 우리는 편안한 북쪽(오른쪽) ‘챕만’ 등산로를 택했다. 자갈에 눈이 쌓여 여름보다 오히려 산행이 편했다.
계곡물을 건너 침엽수 삼나무와 소나무가 시야에 들어온다. 모두 하얀 눈으로 장식됐다. 여기에 0.8마일을 오르면 쿠카몽가 삼림지로 들어섰다. 절반 지점이지만 등산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옅어지는 산소에 숨이 차오른다. 다리에 통증이 몰려온다. 바람에 날리는 눈송이가 얼굴을 파고든다. 선글라스를 껴야 했다.
고지가 가까워졌다는 듯 가파른 지그재그 등산로 스위치백이 펼쳐진다. 마지막 인내가 필요한 구간이다. 옆으로는 깎아지른 급경사.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며 뒤를 돌아봤다. 온통 하얗다. 함박눈의 눈발이 온 세상을 덮고 있다. 깎아지른 계곡도 우리가 걸어 오르는 눈길도 모두 백색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깨끗하게 숨겨 주듯.
저기 멀리 목적지가 보인다. 말 안장처럼 넓고 안락하게 생긴 광장이다. 아이스하우스 새들이다.
이곳 새들은 북쪽 팀버 마운틴(0.9마일), 텔레그라프 픽(2.9마일), 선더 마운틴(3.9마일)으로, 또 남동쪽으로 쿠카몽가픽(2.4마일), 남서쪽 온타리오 픽(2.8마일), 그리고 동쪽 ‘미들 포크 트레일(5.4마일)로 이어지는 4갈래 등산로로 갈라지는 등산객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모든 등산객이 잠시 쉬었다가 서로의 갈 길을 가는 곳이다.
우리는 하산 로를 택했다.
준비물
물,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간식 또는 고열량 음식은 필수. 물 소비량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리터면 충분하다. 하지만 여름 산행에서는 물이 더 필요하므로 1.5리터 이상을 권장한다. 겨울 산행이라면 눈 밑에 결빙이 생기므로 등산화와 미니 스파이크(크램폰)은 챙겨 가는 것이 좋다.
‘쿠카몽가 산림지’(Cucamonga Wildernesss)는 무료 산림지 입장 퍼밋을 가져야 입산할 수 있다. 레인저스테이션에서 발급하지만 요즘은 팬더믹 기간으로 모두 문을 닫았다. 따라서 퍼밋 없이 등산이 가능하다. 여기에 국유림지에서 필요한 파킹 퍼밋(어드밴처 퍼밋)이 있어야 한다.
레인저 스테이션이 문을 닫았으므로 동네 Big 5 등 등산용품 업소에서 연중 퍼밋을 구입할 수 있다.
야영도 가능하며 개울과 호수로부터 200피트 떨어진 곳이면 어디에서도 가능해 여름이면 주말 야영객들로 북적인다.
가는 길
210번 프리웨이 베이스라인 로드(Baseline Road·52번 출구)에서 내린다. 패두아(Padua Avenue) 길을 만나면 북쪽으로 올라간다. 약 1.7마일 거리에 마운트 볼디(Mount Baldy Road) 길을 만난다. 여기서 우회전. 계속 북상하면 마을이 나오고 왼쪽으로 레인저 스테이션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퍼밋을 픽업해 1.5마일 더 가면 목적지에 다다르는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은 마운틴 볼디로 가는 길, 오른쪽(직진)은 아이스하이스캐년 초입 파킹랏이다. 등산로 주소는 7698 Ice House Canyon Road, Angeles National Forest, Mount Baldy, CA 91759.
김정섭 기자 john@usmetr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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