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의 학전 소극장 아쉬움 속 역사의 뒷편으로
문화 예술의 아이콘 김민기 암 딛고 다시 나서길
지난달 국내 언론에 자주 언급된 예술 단체와 예술인은 학전과 김민기(73)다. 대학로 동숭동에 위치한 국단 학전(學田) 소극장은 1993년 3월에 개관해 2024년 3월 31일 많은 문화 예술인들의 아쉬움 속에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졌다. 만성 재정난과 학전을 대표한 김민기의 투병이 겹치면서다. SM의 이수만 대표는 1억 원을 쾌척해 학전 살리기에 동참했다.
SBS 방송은 학전 폐관에 즈음에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다큐멘터리를 3부작으로 방영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마지막 3부작은 동시간대 최고의 시청률을 보였다. 장르를 떠나 잘 만들고 우수한 콘텐츠는 모두가 공감하기 마련이다.
이 다큐는-뒷것 김민기-예술인의 일생을 집중 조명했다. 특정인의 다큐를 3부작으로 편성하는 것만으로도 인물의 위대함을 읽을 수 있다. 특징은 정작 주인공 김민기의 직접 인터뷰가 없다는 점이다. 예전 신문, 방송 인터뷰를 풀었고 학전 출연진과 오랫동안 김민기와 인연 맺은 이들의 반응과 회고를 종합했다. 김민기는 철저히 무대의 ‘뒷것’으로 인터뷰 요청을 철저히 거부한 예술인으로도 유명하다. 가장 최근이 2018년 9월 JTBC 손석희 앵커의 뉴스룸 인터뷰였다. 한 때 언론인 최고 영향력의 손석희였기에 가능했다고 판단된다.
70, 80년대 심지어 60년대 대학과 청년기를 보낸이들에게 김민기는 애국가에 버금가는 ‘아침 이슬’로 각인돼 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김민기의 아침 이슬을 솔로나 떼창으로 부르지 않았다면 그는 이방인이다. 이런 연유 탓에 당사자는 아침 이슬이라는 과거에 얽매이고 자신의 모든 것이 투영되는 점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예전 인터뷰에서 잘 드러난다.
학전의 배우, 스태프들이 사석에서 “선생님에게 노래를 요청했지만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고 밝혔다. 누구도 김민기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다. 딱 한 차례 1988년 한겨레 신문과의 겨레 노래 때였다. 아침이슬, 친구, 상록수, 철망 앞에서, 봉우리, 늙은 군인의 노래 등 수많은 명곡을 남긴 싱어송라이터였지만 그가 공개 석상에서 노래한 모습은 찾기 어렵다. 가수인데 노래를 하는 가수가 아닌 전설의 가수인 셈이다.
70, 80년대 김민기는 저항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그는 애초부터 저항과 먼 심성을 갖고 있었다.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정권이 저항의 아이콘으로 밀어 넣었다. 가수로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봅 딜란(82)은 월남전 반대를 위해 1963년 ‘Blowin in the Wind’라는 명곡을 남겼다. 이후 딜란은 반전의 상징이 됐다.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 출신의 그는 1970년 그림을 그리다가 작품이 막혀 잠시 머리를 식히면서 기타를 잡고 만든 곳이 아침 이슬이다. 1971년 독집 앨범에 수록됐다. 스스로 말했듯이 “너무 추상적인 곡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1975년 박정희 유신 정권에 의해 아침 이슬은 금지곡이 됐다.
이후 유신정권은 김민기의 모든 것을 금지한다. 그가 노동과 농사 일에 종사한 것은 유신 정권이 벼랑 끝으로, 심지어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갔기 때문이다. 당시는 중앙정보부가 반정부 인사를 쥐도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는 그런 암흑의 시대였다.
1987년 6.10 항쟁으로 민주화가 되면서 비로서 금지곡들이 해제된다. 김민기는 1985년 서울 평창동 갤러리에서 국립극장 공연과 극단 담당 여직원 이미영과 결혼한다. 김민기는 경기고, 부인은 마지막 고교 시험 시대의 경기여고 출신이다. 필자는 이미영의 동료로 결혼식에 참석했다. 결혼식 날 비가 엄청 뿌렸다. 결혼식 음악을 국립국악원 출신의 김영동 씨가 맡았다. 김민기와 이미영의 슬하에는 아들 둘이 있다.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서인지 모두 건축가다.
싱어송라이터 김민기는 1993년 3월 사비를 들여 대학로에 극단 학전 소극장을 개관한다. 공개 무대에 서지 않았던 그는 학전 개관을 위해 레코드사로부터 앨범 발매를 약속하고 선불을 받는다. 돈이 필요해 앨범 4장을 동시 발매했다고 한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과 김광석의 소극장 장기 공연으로 학전은 명실공히 동숭로의 명소로 자리 잡는다. 싱어 송 라이터에서 뮤지컬 연출가로 본격적인 뒷것으로 자리 잡는 시기다. 극단 학전은 뮤지컬과 연극을 통해 수 많은 배우들을 배출했다. 스타 등용문이 됐다. 무대 진출이 소원인 꿈나무들에게 학전은 꿈의 극단이었다. 현재 영화계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한 설경구, 황정민, 김윤석, 조승우 등은 학전을 거친 대표적인 스타들이다. 포스터를 붙였던 설경구는 인터뷰에서 “김민기 선생님과의 만남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문화 예술은 어느 나라에서든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일반인들은 대중 예술을 선호한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문화 예술은 정부와 기업의 협찬 없이는 발전이 불가능하다. 세계 정상급으로 위치한 뉴욕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모두 협찬으로 지탱한다. 브로드웨이의 연극,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김민기는 명문교 출신이다. 경기고, 서울대학교 그가 손을 벌리면 협찬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노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게다가 손해가 날 게 뻔한 아동극도 공연에 올렸다. 누군가는 해야 된다는 책임감이었다. 사실 아동극은 극립극단, 서울시립극단 등이 해야 하는 게 옳다. 학전이 폐관되고 김민기가 재조명되면서 모든 이가 그에게 존경심을 보이는 것은 너무 순수했기 때문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솔직히 동시대인들은 김민기에 많은 빚을 진 셈이다.
서슬 퍼런 군사 독재 시절 불법적인 탄압으로 최고, 최상의 음악을 송두리째 빼앗긴 뮤지션 두 명 꼽으라면 김민기와 신중현이다. 이름 자체가 금지였다. 김민기는 가삿말등 음악의 내용을, 신중현은 1960년대 트로트 일색 시대에 한국에 맞는 새로운 음악 형태를 바꾼 파이어니어들이다. 이들에게 가한 탄압은 시대의 아픔이자 공권력이 저지른 사실상의 범죄였다. 선진국 같으면 정부가 사죄를 하고 보상해야 마땅하다. 김민기는 뮤지컬 연출가 제작자로 많은 상을 받았다. 그러나 정부가 주는 어떤 문화 예술의 상도 받지 못했다. 미국 같으면 대통령 자유 메달을 수상해도 될 만한 문화 예술 아이콘이다. 암 투병을 털고 다시 연출가로 나서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
문상열 전문기자
moonsytexas@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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