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협회와 달리 무능력 행정, 불공정 홍명보 선임
한국 스포츠 국민 여가 선용 정도 미국과 달라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은 지난 9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해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로부터 심하게 상처를 받았다. 10월에는 국정조사 증인으로 채택됐다. 한국의 여야 정치는 서로를 죽여야하는 게임을 벌인다. 그럼에도 축구대표팀 홍명보 감독과 정몽규 회장에게는 여야가 없었다. 한 목소리로 축구협회의 무능력, 불법, 불투명한 행정, 감독의 불공정한 선임 과정 등을 비판했다. 재벌기업의 정 회장은 국회의원들로부터 온갖 수모에 가까운 질타를 받고도 축구협회 회장 4연임(임기 3년)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축구협회 회장 자리가 팬들의 성난 비난과 성토에도 버틸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체육, 문화, 예술 분야 종사자들은 국회에 참석하지 않는 게 좋다. 정 회장의 자세에서 볼 수 있듯 초라해진다. 국회의원들의 자료도 불분명하고 전문성도 떨어지는 상황에서 마구잡이 질문을 퍼부으면 상흔만 크다. 마치 범법 피의자같다. 국민의 알권리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정치인들의 자기 이름 알리기에 다름 아니다. 한국의 국보급 투수 레전드였던 선동렬도 2018년 아시안 게임 후 국가대표 감독 자격으로 국회 국정청문회에 끌려나가 정치인들에게 난타를 당했다. 씻을 수 없는 모욕의 자리였다.
그러나 축구협회 회장처럼 통제받지 않는 권력에 대해서는 그나마 국회가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 특히 축구는 대한민국 국기이고 월드컵 본선에서의 기대가 큰만큼 이에 따른 감독 선임의 공정성이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국민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스포츠 협회 단체장이 연봉을 받는 자리는 하나 뿐이다. 거의 명예직이다. 한국 프로야구를 관장하는 KBO(총재 허구연)가 유일하게 고액 연봉을 받는다. 정치권에서 늘 눈독을 들이는 자리다. 그러나 KBO는 행정의 투명성으로 낙하산 투입을 원천봉쇄하고 야구인 및 야구 관계자를 선임하는 게 뿌리를 내렸다.
축협의 정몽규 회장도 연봉은 없다. 판공비만 사용한다. 그렇지만 권한은 막강하다. 대한민국 체육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자리가 축협 회장과 KBO 수장일 것이다. KBO는 대한체육회 소속이 아니다. 체육복권 로또 지원금을 받는 게 전부다. 자립도가 가장 큰 단체다. 축구의 자립도도 크다.
대한체육회에는 58개 산하 가맹 단체가 있다. 2024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선수의 폭로로 불거진 배드민턴 회장도 역시 연봉이 없다. 하지만 대한체육회에서 내려주는 예산을 자기 맘대로 사용하는 권한이 절대적이다. 배드민턴 협회가 파리 올림픽 후 비난을 받은 것 가운데 하나가 자격도 없는 동호인급을 임원으로 데려간 점, 선수들은 일반석 비행기로 오고 임원들은 비지니스를 제공한 점이다.
미국은 스포츠 천국이다. 영향력이 가장 큰 자리는 NFL 커미셔너 로저 구델(65)이다. 일단 연봉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세금 신고를 한 2019~2021년 해마다 6390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NFL 선수도 구델 커미셔너보다 연봉이 높지 않다. 리그에서 유일하다. 다른 메이저 종목은 슈퍼스타의 연봉이 커미셔너보다 훨씬 높다. 다른 종목의 커미셔너들은 연봉 1000만 달러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MLB 론 맨프레드, NBA 애덤 실버, NHL 개리 배트맨 등은 로 스쿨을 나온 변호사들이다. 공통점은 모두 리그 사무국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굵은 뒤 최고위직에 올랐다는 점이다.
구델은 지난해 10월 NFL 구단주들로부터 3년 계약 연장을 받았다. 2027년까지다. 전임 폴 타글리아부 커미셔너로부터 직책을 이어 받은 게 2006년 9월 1일이다. 3년 연장으로 재임 21년을 하게 된다. 오늘날 NFL의 초석을 다진 피트 로젤(1960~1989년)이후 최장수 커미셔너다. LA 램스 홍보실 근무로 NFL커미셔너에 오른 로젤은 슈퍼볼, AFL과의 합병, 천문학적 방송중계권 계약을 다진 인물이다. 현 커미셔너 구델도 NFL의 수입을 극대화하고 방송중계권을 세분화해 구단에 수익을 가져다 줬다. 부친이 연방 상원의원 출신으로 은수저 가문이다. NFL 사무국 인턴으로 출발해 수장에 올랐다.
한국은 스포츠가 산업 수준에 오르지 않았다. 국민 여가 선용 정도에 머물러 있다. 대한체육회장이나, 스포츠 단체장이 미국처럼 경영 수완을 발휘해 리그에 수입을 안기는 게 중요한 능력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아마추어 종목은 올림픽에서의 메달 수확, 축협은 올림픽 진출, 월드컵에서의 성과 등이 능력의 잣대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대한 양궁협회 정의선 회장과 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이 자주 비교된 이유다. 양궁은 공정하고 투명한 행정으로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수확하는 개가를 올렸다. 축구협회는 잘 하고 있는 올림픽 대표팀 황선홍 감독을 위르겐 클린스먼의 공백을 메우려고 월드컵 대표팀 감독으로 차출해 ‘게도 구럭도 잃는’ 우를 자초했다.
미국 스포츠의 단체장은 프로, 아마추어를 통틀어 대체적으로 장수하는 편이다. NHL 개리 베트맨 커미셔너는 1993년부터 재임했다. 올해로 32년째다. 미국 대학 스포츠를 총괄하는 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회장도 10년 넘게 장수한다. 현 찰리 베이커 회장의 전임 마크 에머트(2010~2023년)는 역대 두 번째로 장수했다. NCAA는 1906년에 창설된 비영리 단체다. 풋볼과 농구의 중게권료 수입만으로도 대학 스포츠 선수들의 장학금 지원이 가능하다. NCAA는 디비전 I, II, III 등에 속한 대학이 1,100개교다. 방대하다. 2022~23 회계 연도에 벌어들인 수입이 12억 8000만 달러고, 지출이 9억 4500만 달러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한체육회에 연간 지원하는 예산이 4000억 원 을 약간 웃돈다.
한국과 미국의 스포츠는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다르다. 단체 회장도 마찬가지다.
문상열 전문기자 moonsytexas@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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