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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 복지재단으로부터 생활지원금 수혜자를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경제적 보조를 해준다는 취지였다. 2년 여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면서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을 위한 의미있는 행사라고 생각했다. 

머릿 속에 떠오르는 이가 한 명 있었다. 4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은 김 선생님이었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한 신학교를 통해서다.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학교에서 조교활동도 열심히 하는 분인데 몇 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학교 관계자는 “김 코디는 암센터에서 일해서 정보가 많으니 우리 김 선생님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정작 도움은 ‘김 코디’가 더 많이 받았다.  

김 선생님은 밝고 씩씩한 분이셨다. 싱글맘으로 홀로 아들들을 양육하던 중 때 아닌 유방암 진단 소식에 앞이 깜깜해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잘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수술과 항암치료라는 힘겨운 과정을 버터냈다. 혹시라도 나중에 이 과정을 똑같이 겪을 그 누군가를 위해 치료 과정을 블로그에 공개했다. 덕분에 그 글들은 이제 막 유방암 진단을 받고 앞으로의 일들이 막막한 이들에게 기댈 곳이 되어 주고 있다. 

 

김 선생님 덕분에 ‘김 코디’는 유방암 생존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깊이 알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이 직면하는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고, 이를 도우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실질적인 면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 선생님의 하루하루를 보면서 아픔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특별한 무엇이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생명이 연장 되었으니 더 많이 나누고 싶다”고 했다. 암 투병과 회복 과정에서 알게된 산책로나 캠프장 정보를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며 평소에 건강관리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치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이나 건강 악화로 도움이 필요한 지인이 있으면 자신의 일을 제쳐두고라도 달려간다. 틈틈이 세탁소에서 옷 수선을 하실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이 옷을 입는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달라고 바느질 한땀 한땀에 기도를 담는다.  

 

몇 년 곁에서 지켜 봤기에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심을 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나누고, 베풀까를 고민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봤다. 복지재단의 지원금이 꼭 그녀에게 전해졌으면 했다. 싱글맘에 암환자로 힘겨운 시간을 버텨내야 했던 그녀에게 작은 위로가 됐으면 했다. 누가 들어도 어려웠을 시간을 보냈고, 그렇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고, 이제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김 선생님의 삶에 누군가가 격려를 해줬으면 했다. 그리고 그렇게 전해진 위로와 격려가 그녀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을 확신했다. 

추천서를 마감한 날 오랜 만에 연락을 드려 안부를 전했다. 반가운 카톡이 왔다. 

“…버스에서 우연히 항암치료 중이신 한국 분을 만나서 연락하고 지냈는 데 이번 주에 식사 대접하기로 했어요. 앞으로는 그렇게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통해 이웃들을 잘 섬기려고 해요.”  

아픔이 지나간 자리, 그 곳에 남은 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그 사랑이 자라고 전해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 볼 수 있어서 참, 기쁘다. 

 


김동희 

현재 시더스-사이나이 암센터 건강형평성연구소의 커뮤니티 아웃리치 수석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 전 미주 한국일보, 뉴욕 중앙일보 기자. ‘미국 엄마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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