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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5년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후반에 미국에 왔다. 미국병원에서 일하게 됐다고 했을 때 내 영어 실력을 아는 지인들은 “보스랑은 어떻게 의사소통 할거야?”라고 물었다. 나 역시도 영어가 걱정이었다.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날마다 ‘이불 킥’이었다. 안되는 영어로 친한 척 해보겠다고 동료에게 아침 인사를 했을 때다. “무슨 일 있어? 피곤해 보인다.” 그녀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 날이었다. 그런데 요즘 말로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그 자체였다. 어색한 공기를 느껴 이유를 물었고, 가깝게 지내던 동료가 나중에 알려줬다. 영어로는 “너 피곤해 보여”라는 말은 잘 하지 않는다고. 대신 너 “오늘 귀걸이 예쁘다”, “너 오늘 드레스 예쁘다”처럼 칭찬을 해주는 게 좋다고 했다. 인사처럼 건낸 말이었는데 가만히 있는게 나을 뻔 했다. 

 

하루는 바쁘게 복도를 지나는데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한쪽 옆으로 지나가다 서 있던 동료와 어깨가 살짝 스쳤다. 내가 생각하기엔 한 사람이 지나갈 공간은 충분했고, ‘살짝’ 옷깃 정도 스쳤는데 아니었나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내가 동료를 치고 지나갔다는 거였다. 친한 동료는 사람마다 커다란 버블(Bubble) 속에 살고 있고, 서로가 그 버블이 터지지 않게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해줬다. ‘버블론’에 따르면 나는 두 버블이 꽉찬 공간을 바쁘게 지나며 모두의 버블을 터트려 버린 꼴이었다. 한국에서 ‘만원 버스’ 타본 적 있냐고, 버블이고 뭐고 그건 부딪힌 것도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렇게 소소한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하나, 다른 점이 많았다. 실수하고 후회하고, ‘이불 킥’한 후에 다시 해보고, 그래도 실수하고, 또 배우고…, 수 없이 반복했다. 다행인 건 이를 오해하지 않고 이해해주고, 물어보면 가르쳐주는 좋은 동료들이 있었다. 나의 이 좋은 동료들은 영어권의 문화 뿐만 아니라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려줬다.     

며칠 전에도 어이없는 실수를 해서 보스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제는 좀 가까워진 사이라 “나 거의 울고 있어. 너가 내 얼굴을 봐야해”라고 이모티콘까지 보태서 보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너의 눈물을 이런 일로 허비하지 말기 바래. 나를 믿어. 이런 건 별일 아니야.” 

그 짧은 답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그럼 내 눈물은 어디에 흘려야 할까, 어떤 게 별일 일까. 묻지 않아도 안다. 지난 5년간 나의 동료들이 어떤 일에 슬퍼하고, 어떤 일을 별일로 느끼는지 가까이에서 봤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건강형평성 (Health Equity)’다. ‘건강’이란 모두가 공평하게 누려야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더 아프고, 더 고통을 받는다. 우리는 이런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일한다. 각 커뮤니티, 각자의 언어와 문화에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찾아서 더 나은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다. 때문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을 통해 배우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간다. 우리가 하는 일이 이렇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다른 언어, 다른 환경 속에서 좌충우돌, 엉망진창이라며 스스로 좌절하고 있는 ‘김 코디’를 우리 동료들은 많은 순간 이해해 주고 격려해준다. 

 

실수해서 일이 꼬여버렸을 때 “사람은 누구나 실수해. 우리가 사람이라는 뜻이야. 같이 해결할 수 있어”라고 말하거나, 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면 “너가 직장생활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내가 하는 일이야”라며 웃어 보인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이런 말을 한 5년 쯤 듣고 지내다 보면, 나도 조금씩 비슷하게 바뀐다. 조금은 더 예쁘게 생각하고, 예쁘게 말하게 된다.  

5년이 지나면 영어가 많이 늘겠구나만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기다려주고, 용납해주는 좋은 공동체 덕분에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또 다른 5년을 기대한다. 조금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김동희 

현재 미국병원 암센터 커뮤니티 아웃리치팀 수석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 전 미주 한국일보, 뉴욕 중앙일보 기자. '미국 엄마의 힘' 저자. 

연락처: (213)54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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