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enu

구독신청: 323-620-6717

동희그림.jpg

 

 

여기저기 얼마나 전화를 해댔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연결이 되어도 이 사람이 하는 말, 저 사람이 하는 말이 달라서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언제인가 봤던 영화에서 산길을 잃은 주인공이 밤새 길을 헤메었지만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지었던 허망한 표정, 내 얼굴이 딱 그랬다. 

 

대장암이 재발하신 환자 한 분과 연결이 되어 그 분의 ‘길찾기’를 도와드리고 있다. 암 예방과 교육 분야에서 5년 넘게 일하다 보니 이제 “OOO에게 전화번호를 받았는데 궁금한 것이 있어서요”라며 전화를 걸어오시는 분들이 있다. 많은 경우 미국 의료시스템 안에서 길을 잃으신 경우다. 수술 날짜를 기다리다 갑자기 보험 커버가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분, 암 수술은 받았는데 암닥터를 만나려니 건강보험이 문제가 되신 분,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통역 서비스를 요청하다보니 전화통화가 어려우신 분 등 각자 처한 어려움은 다 달랐다. 대신 미국 의료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또는 영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가 없어서 암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어디선가 길을 잃고 헤메고 있다는 점이 같았다.  

 

이런 전화를 받을 때 “그건 제가 하는 일이 아니라서요”라고 말하기, 쉽진 않다. 한 분 한 분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는 그 분들의 모습이 꼭 나 같아서다. 의료계 종사자로 일하고 있지만 미국 의료시스템은 나에게도 여전히 어렵고, 날마다 배워야 하는 부분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뒤늦게 미국에 온 나 같은 사람에게 영어는 언제나 장벽이다. 이 두 가지 장벽에 부딪혀 어디선가 길을 잃고 답을 찾지 못하다 만나진 분들, 외면할 수가 없다. 

 

내가 아프다면, 우리 엄마 아빠가 이런 경우라면, 나도 똑같이 길을 잃고 막막할 것 같아서 어떻게든 길찾기를 도와드리고 싶다. 문제는 미국 의료시스템이 복잡하고, 개개인에 따라 경우의 수가 많다보니 한가지 길을 정답으로 제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감사한 것은 내 주변에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 이 분들을 함께 도와주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뜬금없이 연락해서 “이런 이런 분은 어떻게 해요?”라고 물어보는 ‘김 코디’의 질문에 그 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선뜻 나눠주신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내어보자면 어디선가 길을 잃고 헤메고 있는, 나 자신일지도 모르는 우리 이웃을 함께 도울 수 있는 조력자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함께 할 때 해낼 수 있는 ‘그 일’을 같이 해나가고 싶다. 

 

영어 표현 중에 ‘fall through the cracks’라는 말이 있다. 시스템을 통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어떤 이유론가 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길을 잃고 계신 분들을 돕기 위해 회사 동료들에게 방법을 묻다 보면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이 말에 빗대어 보면 대장암 환자 분은 아직도 ‘크랙(틈)’에 빠져 계신다. 김 코디의 팔이 너무 짧아서인지 아직 그 분에게 닿지 못했다. 바라기는 이 분을 크랙에서 나올 수 있게 손 잡아 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 크랙을 잘 메꿔서 다음에 다른 사람은 그 곳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메우진 못하더라도 사다리를 만들어 조금 더 빨리 구조해 낼 수 있길 바란다. 한인사회에서 한인들을 위해 이 일을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이들과 더 많이 만나지길 간절히 바래 본다. 

 

 

 
김동희 
현재 미국병원 암센터 커뮤니티 아웃리치팀 수석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 전 미주 한국일보, 뉴욕 중앙일보 기자. '미국 엄마의 힘' 저자. 
연락처: (213)545-1014

일자: 2025.01.09 / 조회수: 24

“참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새 해, 남편에게 운동화 선물을 받았다. 새 신을 신고 나서며 말했다. 남편이 사준 운동화를 신고 나오니 기분이 좋네. 목소리에서 신남이 묻어났는지 남편이 말했다. 올 한 해 슈퍼스타 같은 삶을 살 길 바래. 남편이 선물한 운동화 디자인의 이름이 ‘슈퍼스타’였다....

일자: 2024.12.21 / 조회수: 39

올해의 끝, 우리를 위한 질문 15가지

얼마전 지인이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기사를 공유했다. ‘당신의 자녀가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도록 돕는 15가지 질문(15 Questions To Ask Your Kids To Help Them Have Good Mindsets)’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처음엔 한 아이의 엄마로써 질문을 읽었다. 아이에게 ...

일자: 2024.11.17 / 조회수: 56

엄마를 생각하다

“아이들이 엄마를 언제 생각하는지 알아요? 길가다 예쁜 사람 봤다고 엄마를 떠올리진 않아요. 엄마를 ‘맛’으로 기억해요. 김치찌개 먹으면서, 된장찌개 만들면서 엄마를 떠올리죠. ‘엄마 맛이 아니야. 엄마꺼 먹고 싶어’하면서 전화가 와요.&rdquo...

일자: 2024.10.16 / 조회수: 61

가을, 그녀의 안부를 묻고 싶은 계절

좋아했던 사람이 있다. 인생의 한 시기, 그녀들과 함께여서 참 따뜻했다. 처음 그녀를 만난 것은 어느 식사 자리였다. 밝고 쾌활한 그녀는 그날 모인 많은 이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얼마나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는지,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면 모든 상황이 눈 앞에 생생하게 ...

일자: 2024.09.22 / 조회수: 52

케이크가 냉동실로 간 까닭은?

얼마전 회사 동료가 결혼을 했다. 샌디에고 바닷가에서 결혼식을 올린 그녀가 휴가에서 돌아오자 동료들은 그녀의 결혼식 이야기 듣기로 바빴다. 결혼식 분위기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과 피로연의 즐거운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다가 웨딩 케이크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

일자: 2024.08.09 / 조회수: 212

요즘 미국에서 인기 있는 이름은?

딸 아이의 이름은 그레이스(Grace)다. 하지만 종종 그레이스 에스(Grace S.)로도 불린다. 미국에서는 퍼스트 네임이 같을 경우 라스트 네임의 첫 대문자를 붙인다는 것을 다른 그레이스들을 만나면서 알게 됐다. 한글 이름 중 동명이인을 김영희 A와 B로 구분하는 것의 미국 방식...

일자: 2024.07.14 / 조회수: 53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유난히도 바빴던 상반기를 끝내고, 7월 첫 주 휴가다. 세상의 모든 분주한 것들과 이별하고 나만의 시간, 맛있는 커피 한 잔이 간절하다. 오랜만에 여유 있는 아침이니 핸드 드립(Hand-Drip)으로 마셔야겠다. 핸드 드립은 커피를 만드는 방법 중 한 가지로 푸어 오버(Pour Over)라...

일자: 2024.06.29 / 조회수: 45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불현듯 내가 밥만 먹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남편도 내 앞에서 아무 말 없이 밥만 먹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얼굴이 화끈거렸다. 옆 자리부터 둘러봤다. 그곳에 앉은 젊은 여성들이 우리 이야기를 할 것만 같았다. “저 아줌마랑 아저씨는 별로 사랑하지 않나 봐...

일자: 2024.04.14 / 조회수: 189

‘가라지 세일’에서 배운 오늘의 교훈…

어느 화창한 일요일, 동네를 걷다 보니 아이들이 담요를 깔고 장난감을 팔고 있었다. 아이들은 나무에 ‘가라지 세일(Garage Sale)’이라고 써서 크게 붙여놨다. 풍선으로 예쁘게 장식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지나가다 발길을 멈췄다. 누구는 “너희들 정말 멋진 ...

일자: 2024.03.22 / 조회수: 59

“안과 밖? 당신의 걸림돌은 어디에 있습니까?”

커뮤니티 아웃리치 담당자로 일하다 보면 다양한 상황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현재는 암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인들이 암 정기검진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내가 하는 일이다. 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쉽고, 생존율도 높일 수 있는 대표적인 질병...

일자: 2024.02.16 / 조회수: 65

눈곱 만드는‘샌드맨’과 아기 배달부‘스토크’?

딸아이가 친구를 만났을 때다. 아이 친구 엄마와 같이 앉아 있는데 딸국질을 하는게 보였다. 혼잣말처럼 “뭐 맛있는 걸 혼자 먹었나, 딸국질을 하네”라고 하는 찰나 아이의 친구 엄마는 웃으며 영어로 “딸국질을 하는 걸 보니 키가 크려나 보다”고 했다. ...

일자: 2023.12.14 / 조회수: 127

“간암 치료 10년새 눈부신 발전, 임상시험의 힘”

시더스-사이나이 암센터 COE팀과 이웃케어클리닉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양주동 간 전문의가 간암과 임상시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더스-사이나이 병원 간암센터 양주동 디렉터 B형 간염, 간암 위험율 높여 음주·비만 ×, 건강식·운동 ○ 임상시험으로 최신 ...

일자: 2023.11.17 / 조회수: 67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이 계절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닥터 리’, 10여 년 전 썼던 기사의 주인공이다. 그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이유는 그와의 인터뷰가 정신없이 달리던 내 삶을 멈춰 세웠기 때문이다. 냉기가 느껴지던 작은 방에서 그와 처음 마주했다. 치과의사였던 그를 만난 곳...

일자: 2023.10.23 / 조회수: 65

여성 건강 적신호“젊은 유방암이 증가한다”

한 달에 한두 번은 걸려 오는 전화가 있다. 가슴에 멍울이 있는데 유방암 검사를 어디서 받을 수 있냐는 질문부터 유방암 진단을 받았는데 건강보험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연에 이르기까지 유방암 관련 문의들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상대방의 나이를 알게 되...

일자: 2023.09.19 / 조회수: 63

2023년, 당신의‘장미’는 어떻습니까?

일 주일에 한 번, 팀미팅을 한다. 팀원들이 모두 모여서 한 주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앞으로 계획된 행사들을 논의하는 시간이다. 이 때마다 가장 처음엔 하는 일이 체크 인(Check-in)이다.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데, 서로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공유한다. 이 때 가장 ...

일자: 2023.08.17 / 조회수: 64

“함께 길찾기를 하실 분을 찾습니다”

여기저기 얼마나 전화를 해댔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연결이 되어도 이 사람이 하는 말, 저 사람이 하는 말이 달라서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언제인가 봤던 영화에서 산길을 잃은 주인공이 밤새 길을 헤메었지만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

일자: 2023.07.15 / 조회수: 93

좌충우돌‘김 코디’의 미국직장 적응기

어느새 5년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후반에 미국에 왔다. 미국병원에서 일하게 됐다고 했을 때 내 영어 실력을 아는 지인들은 “보스랑은 어떻게 의사소통 할거야?”라고 물었다. 나 역시도 영어가 걱정이었다.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날마다 &lsquo...

일자: 2023.06.09 / 조회수: 78

자카란다 피는 계절이 되면…

사진 출처: Designmatters at ArtCenter College of Design ‘자카란다’ 피는 계절이 되면 건강검진을 생각한다. 아주 사소한 대화가 자카란다라는 ‘꽃’과 건강검진이라는 ‘행동’을 연결시켰다. 5년전 이맘때다. 회사 동료들과 길을 걷고 있었...

일자: 2023.05.17 / 조회수: 109

이빨 요정, 인플레이션 영향 받았을까?

“엄마, 나 이 빠졌어. 흔들려서 혀로 밀다보니 이렇게 툭 빠졌어.”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손바닥을 펴서 어금니를 보여줬다. 한참 어릴 때만해도 이를 빼려면 울고 불고 난리가 났는데, 이제는 학교에서 이를 뺐다며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는 나이가 됐다. 아...

일자: 2023.04.14 / 조회수: 92

따귀 맞은 영혼의 상처 받지 않는 법

최근 기분 전환을 위해 새봄맞이 책장정리를 했다. 어지럽게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 주제별로 정리하고 키를 맞춰 책꽂이에 넣다 보니 우울한 시절, 낙담이 가득하던 때에 좋은 친구가 되어준 두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따귀 맞은 영혼’, 그리고 ‘너는 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