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저기 얼마나 전화를 해댔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연결이 되어도 이 사람이 하는 말, 저 사람이 하는 말이 달라서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언제인가 봤던 영화에서 산길을 잃은 주인공이 밤새 길을 헤메었지만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지었던 허망한 표정, 내 얼굴이 딱 그랬다.
대장암이 재발하신 환자 한 분과 연결이 되어 그 분의 ‘길찾기’를 도와드리고 있다. 암 예방과 교육 분야에서 5년 넘게 일하다 보니 이제 “OOO에게 전화번호를 받았는데 궁금한 것이 있어서요”라며 전화를 걸어오시는 분들이 있다. 많은 경우 미국 의료시스템 안에서 길을 잃으신 경우다. 수술 날짜를 기다리다 갑자기 보험 커버가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분, 암 수술은 받았는데 암닥터를 만나려니 건강보험이 문제가 되신 분,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통역 서비스를 요청하다보니 전화통화가 어려우신 분 등 각자 처한 어려움은 다 달랐다. 대신 미국 의료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또는 영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가 없어서 암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어디선가 길을 잃고 헤메고 있다는 점이 같았다.
이런 전화를 받을 때 “그건 제가 하는 일이 아니라서요”라고 말하기, 쉽진 않다. 한 분 한 분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는 그 분들의 모습이 꼭 나 같아서다. 의료계 종사자로 일하고 있지만 미국 의료시스템은 나에게도 여전히 어렵고, 날마다 배워야 하는 부분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뒤늦게 미국에 온 나 같은 사람에게 영어는 언제나 장벽이다. 이 두 가지 장벽에 부딪혀 어디선가 길을 잃고 답을 찾지 못하다 만나진 분들, 외면할 수가 없다.
내가 아프다면, 우리 엄마 아빠가 이런 경우라면, 나도 똑같이 길을 잃고 막막할 것 같아서 어떻게든 길찾기를 도와드리고 싶다. 문제는 미국 의료시스템이 복잡하고, 개개인에 따라 경우의 수가 많다보니 한가지 길을 정답으로 제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감사한 것은 내 주변에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 이 분들을 함께 도와주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뜬금없이 연락해서 “이런 이런 분은 어떻게 해요?”라고 물어보는 ‘김 코디’의 질문에 그 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선뜻 나눠주신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내어보자면 어디선가 길을 잃고 헤메고 있는, 나 자신일지도 모르는 우리 이웃을 함께 도울 수 있는 조력자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함께 할 때 해낼 수 있는 ‘그 일’을 같이 해나가고 싶다.
영어 표현 중에 ‘fall through the cracks’라는 말이 있다. 시스템을 통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어떤 이유론가 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길을 잃고 계신 분들을 돕기 위해 회사 동료들에게 방법을 묻다 보면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이 말에 빗대어 보면 대장암 환자 분은 아직도 ‘크랙(틈)’에 빠져 계신다. 김 코디의 팔이 너무 짧아서인지 아직 그 분에게 닿지 못했다. 바라기는 이 분을 크랙에서 나올 수 있게 손 잡아 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 크랙을 잘 메꿔서 다음에 다른 사람은 그 곳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메우진 못하더라도 사다리를 만들어 조금 더 빨리 구조해 낼 수 있길 바란다. 한인사회에서 한인들을 위해 이 일을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이들과 더 많이 만나지길 간절히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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