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이 빠졌어. 흔들려서 혀로 밀다보니 이렇게 툭 빠졌어.”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손바닥을 펴서 어금니를 보여줬다. 한참 어릴 때만해도 이를 빼려면 울고 불고 난리가 났는데, 이제는 학교에서 이를 뺐다며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는 나이가 됐다. 아이는 “오늘도 ‘투스 페어리’가 올까. 왔으면 좋겠다. 20불 정도 줬으면 좋겠다”면서 알 수 없는 웃음을 보였다. 아직도 이빨 요정, 투스 페어리(Tooth Fairy)를 믿냐는 질문엔 묘한 표정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빨 요정이란 유치를 베게 밑에 두고 자면 선물로 바꿔주는 미신 속의 요정이다. ‘이빨’은 동물의 치아를 부르는 말이지만 투스 페어리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이의 요정’보다는 ‘이빨 요정’으로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빨 요정은 아이들의 이로 만든 왕관을 쓰고 있다. 더 예쁜 왕관을 만들기 위해서 아이들의 유치가 필요하고, 이를 베게 밑에 넣어놓고 자는 아이를 찾아가 그 아이의 이를 가져온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를 가져올 때는 ‘공짜’가 아니라 아이에게 작은 선물을 남긴다. 대부분 그 선물은 현금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잠든 사이 이빨 요정이 된다. 베게 밑에 있는 이를 꺼내고 현금을 넣어놓는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은 이빨 요정이 자신의 이를 돈 주고 사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빨 요정은 아이들의 이를 얼마에 사갈까. 단순한 질문이지만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이빨 요정이 남기고 간 돈은 결국 부모님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올해 아이들의 이가 얼마에 팔렸는가’는 미국 경제를 반영한다.
치과보험 전문회사인 델타 덴탈(Delta Dental)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이빨 요정 역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영향을 받았다. 델타 덴탈은 매년 이빨요정 설문조사(Original Tooth Fairy Poll)를 실시하는데 2023년 아이들의 치아는 평균 6.23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5.36달러보다 16% 포인트 상승한 가격이며, 이 조사가 시작된 이래 25년 최고가를 경신했다. 이빨 요정의 지갑도 인플에이션을 피해갈 순 없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상승세라면 2048년에는 이 한개의 가격에 30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초 조사가 이뤄진 1998년 치아 가격은 1.30달러였다.
특별히 올해 결과에서 주목 한 것은 ‘이빨요정 지수(Tooth Fairy Index)’와 S&P 500지수가 서로 다른 양상은 나타낸 부분이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가 발표하는 S&P 500지수는 미국의 대표적인 주가지수로 미국 500대 기업의 주가를 분석한 수치다. 지금까지는S&P 500지수와 이빨 요정의 치아 매입가가 같은 모양의 그래프를 나타냈기에 아이들 상상속 인물인 이빨 요정이 알고 보면 미국의 경제를 대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했다. 하지만 올해는 치아 가격은 16% 상승한 반면, 주가 지수는 11% 감소, 처음으로 두 지표가 다른 양상을 보였다.
또 한가지 달라진 점은 부유한 지역일 수록 이빨 요정의 인심도 후한 것으로 조사됐으나 올해는 달랐다. 뉴욕, 보스턴 등이 위치한 동북부지역이 역대 최고가를 경신해 왔는데 올해는 전체 평균(6.23달러)보다 낮은 6.14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7.36달러와 비교하면 큰 폭으로 감소한 가격이다.
올해의 특징을 놓고 아직 전문가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그 동안의 패턴이 깨지면서 이를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지 시간을 갖는 분위기다. 다만 이빨 요정이 다녀간 뒤라면 치아 건강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중요한 시기라는 부분에는 뜻을 같이 하고 있다. 델타 덴탈 측은 “아이들과 이빨 요정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건강한 치아를 유지하는 습관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런 주제의 대화는 어릴 때 할 수록 더욱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어릴 때 이가 빠진다는 것은 새로우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경제 교육이나 건강 교육까지 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참고로 더 이상 ‘투스 페어리’를 믿진 않지만 20달러를 가지고 싶었던 우리집 아이는 ‘엄마 투스 페어리’가 곤한 잠에 빠져버린 까닭에 인플레이션 효과로 비싼 가격에 치아를 팔아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이가 빠져도 울지 않던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 “투스 페어리가 오지 않았어”라며 아쉬움의 눈물을 찔끔 흘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김동희
현재 미국병원 암센터 커뮤니티 아웃리치팀 수석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 전 미주 한국일보, 뉴욕 중앙일보 기자. '미국 엄마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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