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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30분. 아시는 분이 문자를 보내셨다. 아침 일찍 미안한데 급한 일이라서 연락을 했다고 하셨다. 글자 하나 하나 사이로 긴박함이 묻어났다. 한 한인 교회에서 리더로 활동하시며 평소 내가 하는 일을 많이 도와주시던 분이다. 

연락을 드려보니 남편이 얼마전 간암 진단을 받으셨단다. 우린 지난 4년간 같이 암 예방 세미나를 준비하기도 했고, 교회 내 유방암 검사 행사를 개최하면서 다른 이들이 보다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애썼다. 많은 순간 ‘암’ 예방을 이야기 했는데, 그 ‘암’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생긴 것이다.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이 스쳤는데, 지금 이 순간 나를 찾는 이유가 있으실테니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기로 마음 먹었다. 수첩을 꺼내고 볼펜을 잡았다. 이야기 중 나온 것들을 꼼꼼하게 받아 적을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몸과 마음이 힘드실텐데, 같은 이야기 두 번 물어보는 실례를 범하고 싶진 않았다. 

 

여러가지 검사 끝에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는 과정 사이사이에서 막히는 부분들이 많다고 하셨다.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몰라서 연락하셨다고 했다. 그래도 동희씨는 암센터에 있으니까 당신보다 잘 알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통화를 하다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처음 듣는 의학용어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그 단어를 몰라서 전화 통화를 하면서 뜻을 찾아보기도 했다. 오히려 내가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모든 일은 가족과 환자가 잘 해나가고 계셨다. 다만 일과 일이 진행되는 사이 약간의 공백, 기다림의 시간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날이 그런 날인 듯 했다. 며칠 기다리면 모두 해결될 듯 보였다. ‘조금 더 기다리시면 될 것 같은 데요’라는 말을 하려는 찰나 한숨 섞인 말이 들려왔다. “병원 담당자와 연락이 잘 안되서… 어떻게 진행되는 지도 모르겠고… 우리보다 더 급한 환자가 있을 거라는 것도 아는데… 하도 답답해서…” 

 

답답해서, 라는 말을 듣는 순간 하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 열심히 받아적던 볼펜도 내려놨다. 어떤 조언이나 설명이 필요해서 시작된 통화가 아니었다. 그냥 답답해서였다. 살다보면 그럴 때, 있지 않은가. 그냥 좀 답답해서, 어떻게 되는 건지 잘 몰라서,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혼란스러워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때 말이다. 특히 내가 모르는 어떤 일, 처음 겪는 일을 헤쳐나갈 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수 많은 순간, 수 많은 사람들이 그런 나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이 날은 내 차례였다.

조금 더 편한 자세로 앉았다. 조금 더 열심히, 제대로 들어드리기로 작정했다. 그렇죠 답답하시죠, 그러네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럴 때는 정말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라고 열심히 맞장구를 치면서 말이다. 

 

코디네이터로 일을 하면 여러가지 교육을 받는다. 아주 유용했던 교육은 커뮤니케이션에 관련된 것이었다. ‘대화를 잘하는 4가지 방법’을 배웠는데 그 첫번째는 ‘적극적인 경청’이었다. 상대방이 한 말 중에서 중요한 단어나 마지막 문장을 기억했다가 똑같이 따라하는 ‘끝말 따라하기’기술이 포함된다. 특히 상대가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거나 힘들어 할 때는 “그게 아니라…”, “그러지 말고…”라며 대화를 긍정적으로 돌려보려고 애쓰곤 했는데, 적극적인 경청에선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있다가 그 말을 그대로 상대에게 돌려주면 된다고 배웠다. 이후로 이 방법을 환자나 환자 가족들과 이야기를 할 때 써봤는데 매우 유용했다.  

이 날도 그랬다. 무얼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는지, 의사도 아닌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나 역시 답답했다. 내 역할이 그냥 들어주기, 가만히 옆에 있어주기였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로 ‘적극적인 경청’에 집중했다. 시간이 흘렀고 대화도 잘 흘렀다. 답답함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고 난 뒤 물었다. 

 

“…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약간 생각하시더니 도움이 필요하신 부분을 말씀하셨고, 그 부분을 알아봐 드리기로 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린 서로에게 감사하며 기분 좋게 통화를 마무리했다.  

언젠가 보스가 그런 말을 했다. 암 예방 교육을 하고 있지만 암 진단을 받은 사람, 치료 받는 사람, 생존자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와 각자의 이야기를 할 거라고. 이민사회는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단다. 그때마다 우리가 다 도와줄 순 없지만 함께 있어 줄 수 있고, 들어 주고, 같이 방법을 찾아줄 순 있을거라고.   

이 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내가 다 도와줄 순 없지만 함께 있어줄 순 있는 날, 들어 줄 순 있는 날.  그래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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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현재 시더스-사이나이 암센터 건강형평성연구소의 커뮤니티 아웃리치 수석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 전 미주 한국일보, 뉴욕 중앙일보 기자. ‘미국 엄마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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