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했던 사람이 있다. 인생의 한 시기, 그녀들과 함께여서 참 따뜻했다.
처음 그녀를 만난 것은 어느 식사 자리였다. 밝고 쾌활한 그녀는 그날 모인 많은 이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얼마나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는지,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면 모든 상황이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였다.
신나게 웃고 떠드는 사이, 그녀의 말에 묘한 매력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상대방을 높여주는 말, 상대에게 힘이 되는 말, 그런 칭찬의 말을 그녀가 하고 있었다.
“OO 씨는 참 예뻐요, 더 예뻐지셨네요.” “OO 씨는 정말 똑똑한거 같애요, 어떻게 그런 것도 알아요?” “OO엄마, 애들 키우느라 힘드시죠? 정말 대단하시네요.”
사실 그녀 역시 눈길이 가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이것 저것 아는 것도 많은 척척박사이기도 했다. 씩씩하게 삼남매를 키워내고 있으니 아이 때문에 가장 힘들 사람은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낮추며 대신 다른 사람을 치켜세웠다. 그날 그녀에게서 겸손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이 단어에 어울리는 또 다른 그녀가 있었다. 그녀 역시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말에 인색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보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줬다. 그래서 몰랐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분야에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풍부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시간이 쌓이고 관계가 깊어지면서 그녀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다. 그녀는 유치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고, 어릴 때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아이들 교육면에서도, 이민생활면에서도 나보다 한참 선배였다.
지나왔던 시간을 되돌아 봤다. 그녀 앞에서 딸 한명 키우고 있는 내가 자녀교육을 이야기했고, 다른 사람들의 이민 경험담을 내 것인 것마냥 늘어놨다. 그녀에 대해 알아가면서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쥐구멍을 찾는 대신 더 열심히 그녀를 만났다. 대신 입을 닫고, 귀를 열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봤고, 도움이 필요할 때면 손을 내밀었다. 탄탄한 지식과 경험에서 묻어 나오는 그녀의 조언은 예리하면서도 따뜻했다. 역시 전문가다웠다.
이런 그녀들이 더 좋아진 것은 이들의 삶에도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였다. 완벽해 보이는 그녀들에게도 눈물의 시간이 있었다니, 위로가 됐다. 예쁘고, 아는 것도 많고, 살림까지 잘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아내이자 엄마인 그녀들의 삶도 나와 마찬가지로 녹록치 않았다니 부쩍 더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그녀들은 불평 대신 감사를 먼저 이야기했다. 지나고 보니 감사할 것이 더 많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의 어려움도, 헤쳐나가야 할 많은 일들도 가까운 미래엔 감사가 될 것을 믿는다고 했다. 닮고 싶은 그녀들이었다.
이런 그녀들을 참 좋아했다. 일상의 분주함에 쫓겨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그녀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편안한 쉼이 됐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포근해진다는 말, 이런 뜻이구나 실감했다.
더 알고 싶고, 또 만나고 싶었던 그녀들과는 이별은 어느 가을, 각자가 다른 도시로 떠나면서 찾아왔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싶었는데 이민생활이 그렇듯 어느 시기에 자연스럽게 함께했던 도시를 떠났다. 그 헤어짐의 계절이 이 맘때라 그런지, 쌀쌀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되면 따뜻했던 그녀들이 떠오른다.
만나고 오면 또 만나고 싶고, 이야기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던 시간이었다. 함께했던 시간 속에서 많이도 웃고, 많이도 배웠는데, 아쉽게도 그 도시를 떠나며 인연을 이어가진 못했다. 문득 요즘은 그녀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가을, 인생의 한 시기를 함께한 인연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은 계절이다.
김동희
전 미주 한국일보, 뉴욕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미국병원 암센터에서 커뮤니티 아웃리치 담당자로 일하며, 미국에서의 일상을 소재로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dhkiml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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