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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닥터 리’, 10여 년 전 썼던 기사의 주인공이다. 그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이유는 그와의 인터뷰가 정신없이 달리던 내 삶을 멈춰 세웠기 때문이다. 

냉기가 느껴지던 작은 방에서 그와 처음 마주했다. 치과의사였던 그를 만난 곳은 병원이 아닌 마약 재활센터였다. 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민 가정의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성실했던 그는 좋은 대학에 갔고, 부모님이 바라던 대로 치과 의사가 됐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했다. 큰 집에서 살며, 좋은 차도 탔다. 소위 말하는 출세 하고 성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속에는 기쁨이 없었다.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고 성공하면 행복하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행복도 기쁨도 없었다.  

허무했다. 술을 마셔도, 마약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결혼 생활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내와 이혼했고, 삶은 피곤하고 의미 없었다. 자살, 어떤 의미로는 자신 있었다. 의사니까, 어떻게 하면 죽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앰뷸런스에서 눈을 떴을 때 내가 무슨 생각을 제일 먼저 했는지 알아요? 실패구나. 인생도,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구나. 갈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어요. 아무런 희망도 없는데 친구가 여기 한 번 가 보라고 해서…..”

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같이 마주 보고 있으면 나도 눈물을 훔치게 될까 봐 살짝 고개를 돌렸다. 이혼, 마약, 자살… 한 가지만으로도 버거운 일이 한 사람의 삶에 쏟아져 내린 것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차가운 공기 사이로 인생의 허무가 전해져서였다. 더 좋은 차, 더 큰 집을 향해 달리고 있던 나에게 그가 그곳에 가봐야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럼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연말 인터뷰니까 뭔가 희망적인 이야길 해줘야 할 텐데 사실 잘 모르겠다고. 그런데 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기쁘게 하는지 궁금하긴 하다고. 희망도 없는 내가 혹시 여기에서 봉사를 하면 그 기쁨의 비밀을 알 수 있을까, 조금은 소망이 생기려고 한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인터뷰를 마쳤다. 

이후로 오랫동안 그의 질문은 나의 질문이 됐었다. 큰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도 찾아지지 않는다는 행복이나 기쁨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나도 궁금했다. 시간이 많이 지난 뒤 우연한 대화 속에서 힌트를 얻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대. 물, 햇빛 그리고 사랑 같은 거 말이야. 그래서 낮은 곳으로 향해야 그것들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거래.” 

방향의 문제였다. 중요한 것은 높은 쪽이 아니라 낮은 쪽에 있다고 했다. 낮은 곳으로 향하고 있는 사람들, 빛이 없는 곳에서 빛이 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모습들이었다. 닥터 리 역시 오랫동안 그가 찾아 헤맸던 기쁨을 재활센터 봉사자들의 얼굴에서 봤다고 했었다. 낮은 곳엔 분명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있는 듯하다. 높은 곳을 향할 때는 보이지 않는, 높은 곳에서는 만나지지 않는 그 특별한 무엇 말이다. 

찬 바람이 부는 계절이다. 낮은 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이웃들을 생각한다. 그 이웃들과 함께할 때, 10여 년 전 닥터 리가 찾고 싶어 했던 참된 행복과 기쁨, 그 너머의 특별한 무엇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조금은 더 따뜻한 계절이 된것 같은 확신이 든다.  

 

 

 
김동희 
현재 미국병원 암센터 커뮤니티 아웃리치팀 수석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 전 미주 한국일보, 뉴욕 중앙일보 기자. '미국 엄마의 힘' 저자. 
연락처: (213)54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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