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 남편에게 운동화 선물을 받았다. 새 신을 신고 나서며 말했다. 남편이 사준 운동화를 신고 나오니 기분이 좋네. 목소리에서 신남이 묻어났는지 남편이 말했다. 올 한 해 슈퍼스타 같은 삶을 살 길 바래. 남편이 선물한 운동화 디자인의 이름이 ‘슈퍼스타’였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운동화보다 그 말 한마디가 더 선물 같았다. 운동화가 남편의 응원을 덧 입었다. 덕분에 운동화를 신고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나를 응원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참 좋은 선물을 받았다.
나에겐 설레임을 덧입은 냄비 세트도 있다.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왔을 때다. 이삿짐을 다 풀기도 전에 커다란 소포 박스 하나가 도착했다. 이사 오기 전 살았던 동네에서 알고 지냈던 옆집 동생이 낯선 도시로 이사간 동네 언니의 새로운 삶을 응원하며 깜짝 선물을 보낸 터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 받은 선물은 설레임 그 자체였다.
한참동안 “왠일이야, 왠일이야”를 연발하다 가위를 찾아와서, 테이프가 붙어 있던 자리를 찾아서, 가위로 그 테이프를 잘라내기까지. 그리고 그 선물 박스를 열기까지 한 10초쯤 걸렸을까. 그 시간이 10분 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쿵쾅쿵쾅 심장 뛰는 소리도 크게 들렸다. 박스의 윗부분을 열고 상자 속 선물을 확인하고서야 참았던 숨을 후 내쉬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예상치 못하게 선물 받은 이 냄비로 요리를 할 때마다 그날의 설레임이 떠오른다. 쿵쾅쿵쾅 심장 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참 좋은 선물을 받았었다.
또 나에겐 든든함이 되어주는 우산도 하나 있다.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을 때다. 평소 알고 지내던 큰 회사의 회장님이 비슷한 분야의 경험이 많으셔서 조언이 필요했다. 오랜 만에 연락을 드렸는데 흔쾌히 시간을 내주셨다. 그래, 무엇을 도와줄까. 몇 년만에 마주한 자리, 반갑게 웃으시며 건내신 첫마디였다. 특별히 무슨 도움이 필요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새로운 분야가 막막해서, 어떻게 무얼 해나가야 할지 잘 몰라서 전문가를 찾아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다. 그때의 나는, 도움이 필요했다. 모든 것이 막막해서 어떤 도움에라도 기대고 싶었던 날 들었던 말, 무엇을 도와줄까. 그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내 손을 잡아주실 분이 계시구나, 확인 한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고 일어서는 데 뭐 좀 줄 것 없나, 하시며 사무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는 이거 가지고 가, 판촉용으로 만든 빨간 우산을 내미셨다. 살짝 주저했다. 회장님 이게 좀…, 괜찮아요. 손사래를 쳤다. 사실은 제 차가 빨간색이에요. 하하하, 웃음으로 무마해보려 했다.
그래도 가져가, 튼튼하게 만들었어, 쓰고 다니면서 우리 회사 홍보도 많이 해주고. 그렇게 손에 쥐어 주시는데 마다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뭐 어떨까 싶다. 차 안에서 우산 쓰는 것도 아닌데, 수 년만에 처음 만난 자리에서 무얼 도와줄까 선뜻 손 잡아 주시는 분인데, 나도 비오는 날 우산 쓰고 다니며 홍보대사 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기쁜 마음으로 받아 나섰다. 덕분에 빨간 우산은 든든함을 덧입었다. 비가 잘 오지 않는 로스앤젤레스에도 그 이후로는 더 자주 비가 오는 것 같다. 빨간 차에서 내려 빨간 우산을 펼 때마다 든든하다. 비를 피할 수 있다. 참 좋은 선물이었다.
선물이란 것이 이렇다. 꼭 무얼 받아서, 꼭 그게 무엇이어서라기 보다, 그 순간을 함께 선물로 받는다. 물건, 그 자체보다는 그 때의 감정, 분위기, 그리고 그 사람이 함께 오는 듯하다. 그래서 물건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사라지지만 그 순간의 느낌과 기억은 오래도록 마음 속에 남아 힘이 되어 준다.
그런 소중한 순간을 선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소중한 순간을 선물해준 이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해야 겠다.
올 한 해,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과 든든함을 선물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김동희
전 미주 한국일보, 뉴욕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미국병원 암센터에서 커뮤니티 아웃리치 담당자로 일하며, 미국에서의 일상을 소재로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dhkiml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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