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무엇이냐 물으면 주저 없이 답한다. “영어 그림책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라고. 시작은 4년전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잠시 멈췄을 당시, 집에 갖혀 외출을 최소화하던 그 시기, 우연히 ‘영어 그림책 100권 읽기’를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좋은 그림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시작한 일에 엄마가 매료되어 버렸다.
영어 그림책을 읽으면 눈과 손이 즐겁다. 물감, 크레용, 색연필, 종이접기, 사진 등 다양한 재료로 그림책 페이지를 채운 작가들 덕분에 그림 구경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른들의 책은 비슷한 크기와 질감으로 만들어지지만 어린이 그림책은 책의 크기는 물론 종이의 질감도 각기 다르다. 책장을 넘기면 손 끝으로 또다른 책읽기의 즐거움이 느껴진다.
‘영어’ 그림책이다보니 은근히 영어 공부도 된다.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이라 전체적으로 문장이 쉽고, 어렵지 않게 읽힌다. 모르는 단어가 툭툭 튀어나오기도 하는데, 문맥 속에서 대충 뜻을 짐작할 수 있어 단어 공부하는 재미도 있다. 처음 만난 단어도 앞 뒤 문장을 통해 뜻을 유추해보라시던 옛 영어 선생님의 말씀을 이제서야 이해할 것 같다.
한 권, 두 권, 금새 읽어내는 성취감도 그림책이 주는 즐거움이다. 그림책은 전반적으로 페이지수가 많지 않다. 예쁜 그림을 보면서, 쉬운 영어로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 아쉽다. 하지만 책이 던지는 교훈은 묵직하다. 사랑, 용기, 인내, 성실, 정직, 꿈, 희망 등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가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다. 하루에 몇 권씩 후루룩 읽어내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책을 일주일 내내 그 내용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러한 영어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보고 싶다면 칼데콧 수상작(Caldecott Medal)이나 시간의 검증을 끝낸 고전 그림책으로 시작해보길 권한다. ‘칼데콧 상’은 미국도서관협회(ALA) 산하의 미국어린이도서관협회(ALSC)가 매년 1월 말 전년도에 영어로 출판된 그림책 중 가장 뛰어난 그림책을 선정하여 그림책 작가에게 시상한다. 19세기 영국의 그림작가 랜돌프 칼데콧(Randolph J. Caldecott)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1938년부터 시상을 이어온 권위있는 상이다. 영어 그림책 중에서 표지에 금색이나 은색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금색은 최우수 작품에 수여하는 칼데콧 메달상, 은색은 우수 작품에게 주어지는 칼데캇 아너상 수상작임을 나타낸다.
최근 수상작들 중에는 2021년 칼데콧 메달을 수상한 ‘워터크레스(Watercress)’를 주목할 만하다. 중국계 작가인 앤드리아 왕이 글을 쓰고, 제이슨 친이 그림을 그린 이 작품은 칼데콧 메달은 물론이고, 전년도 최고의 아동문학 작품에게 주어지는 뉴베리 메달까지 휩쓸었다. 이민 가정의 정체성과 가족의 역사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으로 문학성과 예술성에서 모두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제이슨 친은 이 작품을 통해 동양화와 서양화 기법을 함께 사용하여 두 문화의 어우러짐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아시아 문화를 공유한 덕분에 잔잔한 감동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다.
한편, 고전 그림책을 찾아 보고 싶다면 몇해 전 ‘타임’이 선정한 어린이 고전 추천 리스트를 추천한다. 독창적인 그림과 강렬한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한 고전 그림책들은 수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여러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작품들도 상당수다. 한글로 한번쯤 읽어봤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아이들에게 읽어준 작품으로 유명한 ‘괴물들이 사는 나라(Where the Wild Things Are)’ 등도 타임의 그림책 고전 리스트에서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그림 작품도 감상하고, 영어 공부도 저절로 되는 그림책 읽기. 올해는 이 매력을 듬뿍 빠져보길 바란다.
김동희
전 미주 한국일보, 뉴욕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미국병원 암센터에서 커뮤니티 아웃리치 담당자로 일하며, 미국에서의 일상을 소재로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dhkiml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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