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지인이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기사를 공유했다. ‘당신의 자녀가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도록 돕는 15가지 질문(15 Questions To Ask Your Kids To Help Them Have Good Mindsets)’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처음엔 한 아이의 엄마로써 질문을 읽었다. 아이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떻게 대화를 풀어나가면 좋을지는 항상 시선을 잡아끄는 주제다.
하지만 질문이 1번, 2번을 지나 6번, 7번으로 넘어갈 수록 이 질문들은 아이가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도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 적잖았다. 1번 질문부터 답하기 쉽지 않다. ‘나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 5개는 무엇’이라니.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인데도 대답이 선뜻 어려웠다. 나는 누구일까, 나에겐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이 것들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머물렀던 질문은 7번이었다. ‘3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너 자신에게 어떤 조언을 하겠니? ’. 3년 전이라면…. 영어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할 것, 운동도 조금 더 열심히 할 것 등 몇가지가 떠올랐다. 그런데 문득, 3년이나 지났지만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지금 너에게 어떤 조언을 하겠니’라고 물어도 같은 대답을 할 것 같았다. 뒷통수를 한 대 크게 맞은 기분이었다. 3년이란 시간을 통채로 잃어버린 느낌이다.
그렇다면 10년은 어떨까, 15년은 어떨까. 생각의 흐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매번 ‘조금 덜 불평하고 살 것’이라는 후회와 만나고 있었다. 안그래도 오늘도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고, 왜 이렇게 마음에 안드는 것들 투성이지’라며 알 수 없는 짜증에 불만스러워하던 중이었다. 10년이 지났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0년 전, 20년 전에도 일상이 맘에 들지 않는 것들 투성이였다. 당시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불만의 원천은 회사였다. 이 사람은 이래서 싫었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었다. 일은 많고, 시간은 없었다. 회사가는 게 재미 없었다. 결국 이 불행한 스토리를 사표로 끝내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헛웃음이 난다. 세상 이렇게 만만하게 보고 살았나 싶다. 나도 내 자신이 자신이 싫을 때가 많은데, 어떻게 남이 항상 좋기만 할 수 있을까. 원래 일이란 언제나 많고, 시간은 없는 법 아니던가. 회사, 아침 출근길이 즐겁고 기대된다면 어느 작가의 말처럼 우린 입장료를 내야할지도 모른다. 놀이동산에 가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대신 회사에선 월급을 받는다고 했다. 즐겁지 않은 일에 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댓가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경우와 비교한다면 당시의 나는 꽤나 행복한 사람이었다. 흔히들 하고 싶은 ‘하나’를 위해 하기 싫은 ‘아홉’을 한다고 하는데 일 자체는 즐겁고 재미있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아홉’을 하고 있으면서도 하기 싫은 ‘하나’ 때문에 매일매일 ‘투덜이 스머프’의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 하나가 아닌 아홉을 봤더라면 충분히 즐겁고 감사하며 보낼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이를 위한 이 15가지 질문 덕분에 3년을 너머 10년, 15년 전까지 다녀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15년까지 멀리 갈 필요도 없겠다. 어제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오늘의 내가 귀담아 듣는다면 내일의 나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것이란 확신도 든다.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계획하는 12월이다. 올해 1월으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새해를 뜻 깊게 시작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던 ‘아이를 위한 15가지 질문’을 나를 위한 질문으로 바꿔 책상 앞에 붙여뒀다. 그 리스트를 공유한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새해를 계획하는 의미있는 12월이 되시길 바란다.
김동희
전 미주 한국일보, 뉴욕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미국병원 암센터에서 커뮤니티 아웃리치 담당자로 일하며, 미국에서의 일상을 소재로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dhkiml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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