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일반인들에게 경마하면 으레 도박을 연상케 한다. 실제 도박꾼들 사이에서는 도박의 끝은 경마라고 할 정도다.
동물의 레이스에 베팅이 무모할 수밖에 없다. 경마=도박의 끝판왕쯤 되는 셈이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경마는 스포츠와 레저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더구나 말은 개나 고양이처럼 인간과 매우 친숙하다.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말고기가 금기시되는 배경도 인간과의 친밀함 때문이다.
5월의 첫째주 토요일에 벌어지는 켄터키 더비를 도박의 장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인은 드물다. 경마의 최고봉을 통해 스포츠를 즐기면서 가외로 베팅하는 무대다. NFL의 슈퍼볼 대학농구 NCC토너먼트나 다름없다.
켄터키 더비(5월 첫째주 토요일), 프리크네스 스테이크스, 벨몬트 스테이크스 등의 경주마 대회를 ‘트리플 크라운’으로 부른다.
출주마는 서러브레드(Thoroughbred). 나이로는 3세 수컷들이다. 경주마는 대체적으로 수컷이다. 암말 대회는 따로 있다. 서레브레드는 17세기 영국과 사우디 아라비아 종이 교배된 레이스에 특화된 말. 신장은 대략 160cm, 다리가 가늘고 길어 시속 60~70km의 빠른 속도를 낸다. 말의 내구성은 약한 편이다. 출주마들이 3세인 점은 말로서는 이 때가 전성기이고 가장 체력이 왕성할 때다.
150여년의 트라플 크라운 역사에 3관왕을 차지한 경주마는 19마리에 불과하다. 2018년 저스티파이(Justify 기수 마이크 스미스)가 마지막으로 3관왕을 완성했다. 서러브레드 트리플 크라운이 어려운 이유는 한 대회 출전 후 출주마들의 체력이 바닥을 치기 때문이다.
말들의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특히 프리크네스 스테이크스 3주 후에 열리는 마지막 벨몬트 스테이크스는 트랙 길이가 가장 긴 1 1/2 마일(2.4km)에 이른다. 야구에서 트리플 크라운은 타자는 타율-홈런-타점 1위를, 투수는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을 동시에 석권하는 경우를 뜻한다.
150년 미국 경마 역사는 영국서 유래
미국에서 경마의 역사는 매우 깊다. 150년이 넘는다. 영국으로부터 전수됐다. 스포츠와 문화는 영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여성들이 화려한 의상과 차양이 긴 꽃 무늬 모자를 착용하는 것도 영국 더비의 시작이다. 컨트리클럽에서 여성들이 하얀 옷을 입고 테니스 플레이를 하는 까닭도 영국의 윔블던 대회에서 비롯됐다. 윔블던은 유색 옷을 인정하지 않는다.
‘장미를 향해 뛰어라(The Run for the Roses)’는 슬로건의 켄터키 더비는 루이빌의 작은 마을 처칠다운스에서 열린다. 1875년에 시작됐고 올해 152년째다. 우승마에게 장미를 걸어주어 ‘장미를 향해 뛰어라’는 문구가 만들어졌다.
트리플 크라운의 후발 주자이지만 하이라이트 대회다. 트랙은 1 1/4마일(2km). 출주마가 가장 많다. 보통 20마리. 올해는 19 출주마에서 경기 직전 그레이트 화이트가 상체를 세우면서 기수(알렉스 아차드)가 깔려 레이스에서 뺐다.
켄터키 더비 2주 후에 열리는 프리크네스 스테이크스는 매릴랜드 볼티모어 핌리코 레이스에서 열린다. 트랙은 1 3/16마일(1.9km). 1873년에 시작돼 역사는 켄터키 더비보다 길다. NFL 인디애나폴리스 콜츠(colts)의 전신은 볼티모어다. 닉네임 콜츠는 망아지다. 프리크네스 스테이크스가 벌어지는 이곳에서 연유됐다.
벨몬트 스테이크스는 트리플 크라운의 마지막 대회다. 장소는 뉴욕주 엘몬트 밸몬트 파크다. ‘챔피언을 향해 뛰어라(The Run for the Champions)’라는 슬로건에서 드러난다. 트랙 코스도 언급했듯이 가장 길다. 따라서 출주마가 매우 제한적이다.
켄터키 더비 첫 여성 트레이너 첫 우승
2026년 트리플 크라운 첫 대회 켄터키 더비에서는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졌다. 152년 더비 사상 최초의 여성 트레이너 체리 디보(44)의 골든 템포(Golden Tempo)가 예상을 깨고 우승했다.
경주마 대회에서도 여성 차별은 여전하다. 남성 중심이다. 트리플 크라운 대회를 통틀어 두 번째다. 여성 최초는 2023년 벨몬트 스테이크스의 제나 안토누치다. 디보를 밀어준 마주의 힘이 크다. 더비에 출주하는 말은 수백만 달러를 호가할 정도로 비싸다. 우승마는 트리플 크라운 대회를 마치면 종마로 변신한다. 서러브레드는 오랫동안 활동하기 어렵다. 거의 3세에 국한된다.
골든 템포는 경기전 우승 확률이 23-1이었다. 우승권과는 거리가 먼 출주마였다. 마지막 코너를 돌 때 꼴찌에서 치고나가 우승 후보 레네게이드(Renegade)를 목 하나로 제쳤다. 강력한 우승 부호 레네게이드 확률은 5-1이었다. 골든 템포 기수는 푸에르토리코 출시 호세 오티스(32)다. 2분2초27로 첫 더비 우승을 거머쥐었다. 공교롭게도 2위를 한 레네게이드 기수 이레드 오티스 주니어와는 형제다. 우승 후 곧바로 레네게이드 기수가 격려해준 배경이다. 23-1의 확률을 뚫고 우승한 골든 템포는 상금 310만 달러를 챙겼다. 골든 템포에 2달러를 베팅한 경우 48.24 달러를 받게 됐다.
우승 후 트레이너 체리 디보는 2주 후 벌어질 프리크네스 스테이크스 출전 여부를 유보했다. 말의 건강 상태를 우선적으로 판단했다. 최근 4년 동안 더비에서 우승한 두 말이 프리크네스에 출전하지 않았다. 디보는 “조만간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말이 먼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말을 위해 여기에 있다”며 역사를 만든 골든 템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애마 정신이 짙게 묻어 있었다.
트리플 크라운에 출주하는 서러브레드는 단순한 말이 아니다. 스포츠의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이나 다름없다.
문상열 스포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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